한국의 철천치 원수라고 불러야 하는 일본인 '시마즈 요시히로'
시마즈 요시히로는 사츠마 시마즈가의 17대 당주로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과 의병조직들 사이에서도 악명이 높았던 왜군 장수였다고 합니다.
시마즈 요시히로는 조선 수군이 완전히 박살난 칠천량 해전을 주도했던 인물이었고 결국 조선 수군 연합함대를 격파했습니다. 한국의 역사학계에서는 정유재란이 발발한 제일 결정적인 이유가 칠천량 해전에서의 패배로 평가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일본에서도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3대 대첩이라고 할 수 있는 사천성 전투에서 시마즈 요시히로가 1만 명의 병력을 지휘하여 20만 명의 조명연합군을 대적하여 승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 역사서에는 노량해전 당시를 기록하고 있는 내용이 있다고 하는데요. 그 내용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으로 인해 철수를 준비하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조명연합군에 의해 순천왜성에 고립되어있었다고 합니다. 고립되어 있던 고니시 유키나가를 구출하기 위해 출전했던 장수가 바로 시마즈 요시히로라고 하는데요.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전투가 바로 노량해전이고 시마즈 요시히로는 조명연합군에게 패배했지만 고니시 유키나가의 퇴로를 열어 일본으로 귀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즉, 이순신 장군을 저격한 사람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시마즈 요시히로가 이끄는 병사 중 한명인 것이죠.
그리고 시마즈 요시히로는 남원성 전투 당시 조선의 기술자(도공)들을 대거 자신이 다스리고 있는 사쓰마 번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시마즈 요시히로가 데려간 조선의 기술자들은 일본에 정착하여 생활하였고 그들의 후손들은 서양 기술을 배워 조총을 생산하고 군함과 대포를 생산했던 것입니다.
또한 시마즈 요시히로의 후손들은 정유재란 이후 약 250년 후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트렸고 메이지 유신 시대를 열게 된 주역 세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마즈 번의 28대 당주였던 시마즈 나리아키라는 일본 근대시대를 열게 한 장본인이었고 그의 증조부인 시마즈 시게히데는 인재를 육성하는데 힘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결국 시마즈 번의 28대 당주였던 시마즈 나리아키라는 근대식 대규모 공업단지를 조성했다고 합니다. 이 대규모 공업단지는 용광로, 대포 공장, 가마솥 제작소, 금속 세공소 등을 세웠고 사쓰마 번에 방직공장, 도자기, 제약, 설탕공장 등을 건설하며 일본의 근대화를 밀어붙혔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국 일본 메이지 유신은 서양식 군함이었던 쇼헤이마루를 진수했고 이렇게 일본의 근대화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시마즈 가문이 길러 낸 인재들은 일본의 근대화가 시작되자 조선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죠.
이순신 장군을 저격한 병사는 사쓰마 번 소속의 시마즈 군이었고 메이지 유신 출범 공로자 대부분이 사쓰마 번 출신들이었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일본에서는 시마즈 요시히로가 일본을 이끈 역사적 인물일지 모르겠지만 시마즈 요시히로는 한국인들에게 철천치 원수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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