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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에 기록 된 소드마스터 척준경 장군이 일화 7가지

똥베이런 2017.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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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준경은 한국 역사 중에서도 정사로 인정받는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기록되어 있는 한민족 최강의 소드마스터 이자 고려 최강의 무신입니다. 실제로 척준경 장군에 대해 기록되어 있는 부분에 있어서 믿지 않은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실제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기록되어 있는 척준경 장군의 전설적인 무쌍 내용을 정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정주성 방어전


1104년 2월에 여진족이 정주성을 침공하자 척준경은 여진족으로부터 정평과 선덕관을 성공적으로 방어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척준경은 총사령관 임간에게 직접 말 한필과 무기를 달라고 요구하였다고 하는데요. 임간은 척준경의 요구를 들어주었고 척준경은 기회를 잡아 여진족 적장 2명을 죽이고 여진족을 완전히 몰아냈다.



윤관의 여진정벌


윤관이 여진 정벌로 원정을 떠났을 당시 척준경은 여진정벌에 참여하였습니다. 윤관은 진격하던 도중 여진족이 성을 쌓고 농성을 벌여 시일이 지체되자 "죄를 지어서 죽을 몸이었던 저를 살려주신 장군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라고 말하였다고 하는데요. 말을 한 뒤 척준경은 칼과 방패를 들고 홀로 성벽 위로 올라가 적장을 쳐죽이니 이걸 보고 사기가 오른 고려군이 사기가 올라 성을 함락하게 된다.



윤관 구출


윤관이 위기에 빠졌을 당시 척준경이 결사대 10명을 이끌고 윤관을 구하기 위해 활로를 뚫으려 하려고 했는데요. 당시 낭장 계급으로 함께 출전했던 동생 척준신이 자살 행위라며 뜯어말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척준경은 "나는 한 몸을 나라에 바쳤으니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늙으신 아버님을 부탁하마." 라고 말 한뒤 돌격했다고 합니다. 척준경은 결국 윤관을 구출하는데 성공하였고 척준경이 윤관을 구출하기 위해 목숨까지 건 것을 보면 자신을 알아봐주던 은혜를 갚기 위한 것으로 해석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윤관은 눈물을 흘리며 앞으로 너를 자식처럼 생각할테니 너 역시 나를 아버지처럼 생각해달라고 하며 감사를 표했다고 합니다.



영주성 방어전


여진정벌 당시 여진족이 2만의 대군을 이끌고 영주성을 공격하자 윤관 등 고려측 장수들은 수성전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고 하는데요. 척준경은 홀로 반대하면서 "만약 나가서 싸우지 않으면 적의 병력은 계속해서 늘어날 것인데, 성안의 식량과 구원병이 오지도 않는 상황에서 농성만 하는가?"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이어서 척준경은 "예전에 내가 여진족 때려잡는것을 보지 못했는가? 나는 나가서 싸울테니 자네들은 성 위에서 구경이나 하시오." 라고 말한 뒤 결사대를 이끌고 나가 여진족을 몰아냈다고 합니다. 척준경이 피리를 불며 개선하자 윤관 등 영주성에 있던 장수들이 내려와 절을 하며 맞이했다고 합니다.



웅주성 방어전


영주성 방어전 다음달에는 여진족이 웅주성을 공격해왔는데 최홍정이 지휘하는 고려군이 한 차례 여진족과 교전하여 대승을 거두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여진족의 웅주성 포위는 더욱 견고했다고 합니다. 마침 웅주성 안에는 척준경이 있었는데 최홍정은 척준경에게 "당신이 포위를 뚫고 외부로 나가 구원군을 이끌고 오지 못한다면 웅주성 안에 있는 사졸들은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오." 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척준경은 홀로 사졸의 해진 옷을 입고 포위망을 돌파한 후 정주로 들어가 병력을 정돈, 통태진, 야등포를 경유한 뒤 길주에 상륙해 여진족을 격파하니 성 안의 사람들이 감격하여 울었다고 합니다.



이자겸의 난


고려 중기에 이자겸이 난을 일으키자 인종이 직접 진압군 앞에 모습을 들어냈다고 합니다. 이에 고려 인종은 반란군의 해산을 종용하는 바람에 이자겸이 패할뻔 했다고 하는데요. 이에 척준경이 호령하여 진압군을 다시 휘어잡아 공성전을 벌이는 바람에 이자겸의 난은 실패했다고 합니다.



이자겸의 난 진압


척준경은 본래 성품이 강직한 편이라고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척준경은 인종에게 죄를 범한 것에 대해 죄책감이 있었기 때문에 인종의 설득에 응하여 직접 이자겸을 체포하러 나서게 되었는데요. 갑작스럽게 이자겸의 반군이 도성에 침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노비 20명과 나무 몽둥이를 뽑아들고 대궐로 달려갔다고 합니다. 이후 인종을 성 밖으로 피신시키려고 하자 이자겸의 반군은 인종에게 활을 쏘며 공격해오자 척준경은 고함소리 한번으로 이자겸의 반군들을 질리게 했다고 하는데요. 척준경의 활약으로 이자겸과 그 식솔들이 잡히게 되었고 이자겸의 반군들은 진압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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