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명나라17 한국인이 임진왜란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5가지 임진왜란은 1592년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대륙(명나라) 정벌을 목적으로 벌인 전쟁입니다. 임진왜란은 1592년 임진년에 왜군이 벌인 난리라고 하여 임진왜란이라고 통칭한다고 합니다. 연합국가 형식의 일본 임진왜란 당시 일본 열도의 경우 조선, 명나라와 같은 중앙정부의 집권 방식이 아닌 힘 있는 영주들이 연합한 연합 성격이 상당히 강한 정부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세력이 막강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명령을 내리긴 했지만 조선을 침공했던 왜군의 군사력은 통합체제로 동원이 가능 한 것이 아니었는데요. 일본 열도의 영주들 중 사이에서도 힘이 제일 막강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 후에 임진왜란은 바로 종결되었다는 점을 봐야 한다고 합니다. 즉, 당시 일본은 중앙정부가 전쟁을 일으킨 것이 아닌 .. 밀리터리 2018. 3. 1. 더보기 ›› 역사학자들이 평가한 동북아시아를 대표하는 전쟁 6개 한,중,일 역사학자들은 꾸준히 동아시아 역사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역사학자들은 전문적으로 역사를 연구하기 때문에 이들의 연구 자료는 신빙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역사학자들이 평가한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전쟁들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임진왜란 1592년에 발발한 동아시아 국제전으로 평가받고 있는 임진왜란은 한,중,일 3개국의 역사에도 큰 영향을 끼칠 만큼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역사학자들은 임진왜란 종전 이후 동아시아 정세가 크게 바뀌었기 때문에 임진왜란을 지속적으로 연구할 수 밖에 없다고 하는데요. 한, 중, 일 역사학자들은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전쟁 중 하나로 임진왜란을 빼놓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세키가하라 전투 세키가하라 전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 밀리터리 2018. 1. 24. 더보기 ›› 고려가 멸망할 수 밖에 없었던 5가지 이유 한국사에서 조선 이전의 국가였던 고려가 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소개해드릴까합니다. 물론 결정적으로 위화도 회군을 통해 고려가 멸망하기는 했지만 위화도 회군이 아닌 다른 문제로도 고려가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고려 내부의 심한 부정부패 고려 권문세족 염흥방을 기준으로 많은 권문세족들은 부정부패를 하였습니다. 특히나 역사서에 보면 권문세족의 횡포로 인해 백성들은 1평의 땅도 얻지 못했다라고 하는데요. 위화도 회군이 아니었더라도 혁명이 일어나 고려가 멸망했을 가능성도 보고 있습니다. 사병제도로 인한 중앙정부 세력 약화 고려는 귀족들에게 사병을 가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이성계의 경우에도 막강한 사병을 보유하고 있었는데요. 사병제도로 인해 고려의 중앙정부는 힘을 .. 밀리터리 2017. 12. 13. 더보기 ›› 전 세계 사람들은 임진왜란을 어떻게 부르고 있을까? 임진년에 일어난 왜군의 조선침공에서 일어난 난리라고 하여 임진왜란이라고 공식 명칭을 사용합니다. 임진왜란은 세계 각 국에서 어떻게 부르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영미권 국가 및 서양국가들의 임진왜란 명칭 영미권 및 서양국가들은 임진왜란이 7년 동안 일어났다고 하여 7년 전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영어권에서는 일반적으로 'Japanese Invasions of korea in 1592' (1592년 일본의 한국 침공)이라고 표기하나 간혹 'Imjin War' 라고 표기하는 사례도 간혹 있다고 합니다. 'Korean-Japanese Seven Year War' 라고 표기하는 사례도 있지만 명칭도 길고 서양에서 18세기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과 관련된 7년 전쟁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런 표.. 밀리터리 2017. 7. 16. 더보기 ›› 중국 명나라 멸망의 원인을 제공한 전투 3개 만력삼대정은 명나라 만력제 제위기간에 일어난 3개의 전쟁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명 신종 만력20년부터 28년(1592년 ~ 1600년) 사이에 발생하였던 서북, 동북, 서남 변경지역에서 발생하였는데요. 만력삼대정은 몽골족 보바이의 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공하였던 임진왜란, 묘족 토사 양응룡의 반란이라고 합니다. 명나라는 결국 3개 전쟁에서 모두 승리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극심한 국력을 소모하였다고 합니다. 보바이의 난 (1592년 2월 18일 ~ 9월 18일) 보바이는 몽골족 사람으로 명나라에 항복하여 공을 쌓고 유격장군에 올랐다고 합니다. 만력제 19년에 몽골족이 침입하자 보바이는 스스로 3천명을 이끌고 구원하겠다고 청하였다고 하는데요. 보바이는 몽골족의 침입을 수습하고 몽골병력을.. 밀리터리 2017. 7. 11. 더보기 ›› 반응형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