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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대령'이 미국에서 미국의 전쟁영웅으로 평가받는 이유

똥베이런 2018.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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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대령은 한인교포 2세로 1941년 2차대전에 미국이 참전을 공식화하자 징집대상에 포함되어 미 육군 병사로 입대했다고 합니다. 김영옥 대령은 미 육군 병사로 입대한 후 육군 사관학교후보생으로 선발되었고 그는 미 육군 442연대 100대대에 배치되면서 소위로 임관하게 되었습니다.



김영옥 대령이 이끄는 일본계 2세 부대였던 100대대는 2차대전 당시 로마점령 작전에 큰 공을 세우게 되는데요. 당시 김영옥 중위가 이끄는 100대대는 로마 전선의 피사 전투에서 단 한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키지 않고 피사를 점령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 사령관이었던 마크 클라크 장군은 김영옥 대령의 계급이 중위라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바로 진급시켰다고 합니다. 즉, 김영옥 대령은 2차대전 당시의 미 육군 장군도 인정한 미국 최고의 군인이었던 것입니다.



김영옥 대령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예비군 소집에 의해 미 육군에 재입대하여 한반도 전선에 투입되었다고 합니다. 



한반도 전선에서 근무하던 김영옥 대령은 당시 대위계급이었는데 1951년 10월에 소령으로 진급하면서 미 육군 역사 상 최초의 아시아계 보병 대대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김영옥 대령의 전설 중 하나인 한국전쟁 당시 20일 만에 1개 대대만을 이끌고 60km나 북진해 현재의 휴전선 형태를 만들어 냈다는 것 입니다. 결국 김영옥 대령은 미 육군의 오인폭격을 받아 부상당해서 미국으로 귀국했다고 합니다.



또한 김영옥 대령은 미 육군 최초로 독도법 만렙을 찍은 인물이라는 점이라고 합니다. 2차대전, 한국전쟁을 포함하여 김영옥 대령의 포병지원 요청은 포병관측장교보다 더 정확했기 때문에 신나게 미 육군 포병대가 포격을 했다고 하는데요. 실제 김영옥 대령의 평전에 의하면 자신이 2차대전부터 군단 포병대에 포병지원을 요청하면 무조건 승인되어 폭격지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김영옥 대령의 실전 독도법은 현재 미 육군 포병술 교리에도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즉, 김영옥 대령은 현대전의 신이라고 불리는 실전 포병술을 미 육군 교리에 접목시켜 미 육군 포병의 화력을 명중률을 올려준 셈이라는 것입니다.


김영옥 대령은 전역 이후 미국 내 한인사회에 큰 공헌을 했다고 합니다. 즉, 일본계들이 아닌 한인계들을 위해 한인박물관을 만드는 등의 노력을 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김영옥 대령을 알고 지내는 한인들은 김영옥 대령을 '큰 어르신'으로써 대우했다고 합니다.



김영옥 대령의 평전의 일화를 하나 말씀드리자면 미 캘리포니아 의회에서 위안부 관련 결의안을 제출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일본계 미국인들은 반대 로비를 했다고 하는데요. 이 소식을 들은 김영옥 대령은 일본계 미국인 2차대전 참전용사들을 찾아가 그들을 설득하여 반대 로비를 그만두게 했다고 합니다. 김영옥 대령의 절친의 이야기에 의하면 김영옥 대령은 2차대전 일본계 참전용사들사이에서 '큰 어르신'으로 불렸기 때문에 발언권이 컸다고 합니다.



김영옥 대령은 현재 고인이 되었지만 미 한인사회와 미국 전쟁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입니다. 또한 김영옥 대령의 아버지는 미국에서 일하면서 벌었던 돈을 전부 독립자금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즉, 김영옥 대령은 독립운동가 집안의 자손이자 미국인들이 존경하는 위대한 한국인이라는 점을 우리는 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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