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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독립투쟁사에 한 획을 그었던 독립군 사관학교

똥베이런 2017.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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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무관학교는 무장독립군 양성기관으로 1911년 서간도(길림성 류하현)에서 개교하였다고 합니다. 신흥무관학교는 현재 경희대학교의 전신이라고 하는데요. 신흥무관학교의 졸업생들은 서로군정서 의용대, 조선혁명군, 대학독립군,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등에 참여하면서 활동했다고 합니다. 신흥무관학교는 무장 독립운동의 한 축을 차지하며 민족 해방에 크게 기여한 사관학교라고 볼 수 있으며 한국 독립투쟁사에 있어서 한 획을 그을정도로 크게 기여했습니다.



신흥무관학교 설립배경


일제의 침략에 맞서 항일 의병전쟁과 같은 무장저항이 있었고 을사조약 체결 전, 후와 대한제국 군대 해산 이후에 의병활동이 활발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제는 조선인을 학살하고 마을을 불태우는 등 잔혹하게 진압작전을 실행했습니다. 결국 1910년 한일합병으로 조선이 식민지가 되자 독립운동가들은 만주와 연해주 등지로 활동무대를 옮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 이상룡 선생을 주축으로 윤기섭, 이시영, 이회영 형제와 김형선, 이장녕, 이장직, 이동녕 등 군인이 중심이 되어 설립했다고 합니다. 신흥무관학교 초창기에는 신흥강습소란 이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신흥무관학교라는 이름은 1919년 3.1 만세운동 이후에 변경했다고 합니다.



신흥무관학교와 독립군 서로군정서


신흥무관학교는 1920년 무장 독립조직인 서로군정서 창립의 모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서로군정서는 한족회의 독자적인 군사조직이었지만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자 서로군정서와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은 독립운동의 대의를 위하여 임시정부에 합류하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서로군정서는 청산리 전투 등 일제와의 무장 전쟁에 참가하여 일본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신흥무관학교 졸업생 및 지휘관들


무장독립투쟁사를 대표하는 비밀결사 조직이었던 의열단의 단원들과 김좌진 장군, 약산 김원봉이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이라고 합니다. 중국 만주 일대에서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일제에 의해 신흥무관학교가 폐교되었는데요. 신흥무관학교 폐교 이후 졸업생들과 학생들은 김좌진 부대나 홍범도 부대를 찾아가서 합류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합류한 인원들은 청산리 전투 등 일제와의 소규모, 중규모의 전투를 하였다고 합니다.



광복 이후 신흥무관학교


광복 이후 1947년에는 서울 종로에 신흥무관학교의 역사를 계승한 신흥전문학원이 설립되었다고 합니다. 신흥전문학원은 1949년에 정부로부터 신흥초급대학으로 승인받았는데요. 3년 뒤인 1952년에는 4년제 대학인 신흥대학으로 전환되었다고 합니다. 1955년에는 결국 종합 대학으로 승격하면서 신흥대학교가 되었는데요. 1955년에는 서울 회기동으로 이전하면서 1960년 대에 학교명을 경희대학교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즉, 현재 경희대학교의 전신이 바로 독립운동가들을 양성하여 배출했던 신흥무관학교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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