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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16

고대 한반도 사람들은 어떤 언어를 사용했을까? 고대 한반도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라는 국가가 존재했던 지역입니다. 또한 고대 한반도에 거주했던 사람들은 21세기 한국인들의 조상이기도 한데요. 고대 한반도 사람들은 어떤 언어를 사용했을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대 한반도에 존재했던 국가별로 특정 언어를 사용했다는 것은 역사학계의 판단이라고 합니다. 21세기 한반도에 거주하는 사람들 역시 지역별로 사투리를 사용하여 출신지를 짐작하기도 하는데요. 백제 멸망 과정에서 발생한 '황산벌 전투'를 주제로 제작 된 영화인 '황산벌'에서는 전라도 사투리와 경상도 사투리를 접목시켜 코미디화 시키기도 했습니다. 물론 영화 '황산벌'에서 사투리를 접목시켜 코미디화시켰지만 고대 한반도 사람들 역시 사투리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고 합니다. 고구려 역시 한반.. 밀리터리 2018. 4. 10.
한반도에 존재했던 한국의 왕조국가 전투력 TOP7 한국사에 존재했던 왕조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약했던 국가인 신라가 삼한을 통일했는데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한국의 왕조국가들 중 가장 전투력이 높았던 국가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위 고려 한국사의 왕조국가들 중 중세시대를 풍미했던 고려입니다. 고려는 사병제가 가능 했던 국가로 지방호족들의 영향력이 상당했습니다. 하지만 고려는 이의민, 척준경, 김경손과 같은 1인 병기들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특히 한국 역사에서 외세의 침략에 대해 가장 많이 대항했던 국가입니다. 2위 조선 한국 중세 ~ 근대를 풍미했던 국가입니다. 대체적으로 조선은 신기전, 화포와 같은 무기들을 사용했습니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은 중앙집권을 강화하면서 사병제를 폐지했습니다. 3위 발해 고구려가 멸망하고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입니.. 밀리터리 2017. 12. 25.
현대에 이르러 재평가를 받고 있는 것 10가지 최근에 재평가받고 있는 세계의 전쟁사 또는 인물에 대해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현대에 이르러 재평가받고 있는 것들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서유럽의 중세시대 서유럽의 중세시대는 그리스, 로마 문명이 쇠락한 야만의 시대였으며 유럽인들은 르네상스가 오기 전까지 그냥 야만인이었다고 현대인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중세시대에 나름대로 문화가 발전하였고 라틴어와 라틴 문화가 유럽 전역에 전파되었으며 여성 인권은 그리스, 로마시대보다 더 진보하였다고 합니다. 종교적으로 중세 이후 시기보다도 원시종교와 공존이 이루어졌고 종교재판은 탄압보다는 계도의 의미가 컸다고 하는데요. 서유럽의 중세시대는 농업기술면에서 고대를 뛰어넘는 발전을 이룩하였고 이러한 점은 현대에 이르러 재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밀리터리 2017. 7. 4.
역사학계에서 보는 고대 한반도 통일전쟁 시작설 4가지 삼국통일전쟁은 고대 한반도 3개 국의 성장에 따라 3개 국사이에 벌어진 장기간의 전쟁을 말한다고 합니다. 삼국통일전쟁은 3개 국의 대립과 동시에 동아시아의 많은 나라와 종족이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관련된 국제전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역사학계에서는 고대 한반도 삼국통일전쟁 기간을 설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삼국통일전쟁 시기를 서술하려면 자연적인 시간의 흐름에서 어느시기를 정해 전쟁기로 특정화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발표 되었다고 합니다. 4세기 후반설 4세기 전반에 낙랑군과 대방군이 멸망한 후 국경을 접하게 된 고구려와 백제가 옛 중국 군현지역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전쟁을 벌인데서부터 통일전쟁의 시작을 설정 할 수 있다는 주.. 밀리터리 2017. 6. 27.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통일신라가 멸망한 이유 6가지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한국사 최초의 통일 국가인 천년을 유지했던 신라가 무슨 이유 때문에 멸망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잦은 반란 신라는 통일 이후 신문왕 시절에 왕권을 강화하기는 했지만 귀족들의 반란으로 왕권이 금방 약화되었다고 합니다. 통일 신라는 말기에 접어들면서 잦은 반란이 일어났다고 하는데요. 신라 말기에 반란을 일으킨 대표적인 인물이 후삼국시대를 대표하는 후백제의 왕이었던 견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골품제도 신라는 건국 이후 성골과 진골로 나뉘어 신분 제도를 운영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신라 통일의 기반을 만든 태종 무열왕이 바로 진골 출신의 국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신라의 신분 제도인 골품제로 인해 출세에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인재를 육성하지 못한 부분에 있어서 멸망 원인 중 하나.. 밀리터리 2017.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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