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조선56 200년 전 길거리에서 길빵했던 유생들의 최후 200년 전, 한반도는 현재의 대한민국이 아닌 조선이라는 국가가 한반도를 통치했었습니다. 200년 전, 길거리에서 길빵했던 유생들의 최후에 대해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790년, 어느 날 당시 조선의 주요 관직 중 하나인 좌의정을 맡고 있던 채제공이 정조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채제공은 정조에게 '대낮 큰 길가에서 대놓고 담배를 길빵하는 자들을 볼 수 없습니다'라며 사의를 표하고 조정을 떠났다고 하는데요. 채제공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좌의정 자리에서 사의를 표한 후 조정을 떠난 것은 버르장 머리가 없는 유생들의 행동이었다고 합니다. 채제공은 역사에도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정조의 신임을 한 몸에 받았으며 심지어 정조의 스승으로도 평가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한데요. 사건의 발달은 하급관리로 분류되는 8급, .. 실시간 이슈 2018. 8. 4. 더보기 ›› 한국인이 임진왜란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5가지 임진왜란은 1592년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대륙(명나라) 정벌을 목적으로 벌인 전쟁입니다. 임진왜란은 1592년 임진년에 왜군이 벌인 난리라고 하여 임진왜란이라고 통칭한다고 합니다. 연합국가 형식의 일본 임진왜란 당시 일본 열도의 경우 조선, 명나라와 같은 중앙정부의 집권 방식이 아닌 힘 있는 영주들이 연합한 연합 성격이 상당히 강한 정부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세력이 막강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명령을 내리긴 했지만 조선을 침공했던 왜군의 군사력은 통합체제로 동원이 가능 한 것이 아니었는데요. 일본 열도의 영주들 중 사이에서도 힘이 제일 막강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 후에 임진왜란은 바로 종결되었다는 점을 봐야 한다고 합니다. 즉, 당시 일본은 중앙정부가 전쟁을 일으킨 것이 아닌 .. 밀리터리 2018. 3. 1. 더보기 ›› 조선 역사 상 한양을 점령 당했던 대규모 반란 조선 건국 이후 조선 내부에서 일어난 반란은 대체적으로 왕족들에 의해 발생한 반란으로 왕족이 아닌 타인에 의해 일어난 반란은 많다고 할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제외하고 한양을 점령 당했던 적이 한 차례 있었다고 하는데요. 조선 역사 상 한양을 점령 당했던 대규모 반란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조선 역사 상 한양을 점령했던 대규모 반란은 광해군이 폐위를 당한 '인조반정' 이후로 이를 후대에 이르러 이괄이 일으켰다해서 '이괄의 난'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합니다. 역사학자들은 '이괄의 난'을 먼저 살펴보려면 '인조반정'이라는 사건에 대해 알아야 된다고 하는데요. '이괄'은 '인조반정' 당시 앞장서서 군대를 지휘했었지만 2등 공신에 임명되어 불만이 많았고 인조가 왕위에 즉위한 후에는 서인들에.. 밀리터리 2018. 2. 24. 더보기 ›› 20세기 일본은 왜 조선을 침략해야만 했을까? 20세기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고 강제로 합병시켜 식민지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또한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은 한민족 역사 상 최악의 굴욕이자 잊지말아야하는 역사이기도 한데요. 20세기 일본은 왜 조선을 침략해야마나 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0세기 초반 일본은 동아시아 최초로 근대화에 성공하면서 침략전쟁의 첫번째 목표를 조선으로 정했습니다. 또한 일본은 근대무기를 이용하여 조선을 침공했고 조선은 일본에 제대로 대항해보지도 못하고 일본에게 국권을 넘겨야만 했습니다. 일본은 지역 특성 상 섬나라이기 때문에 외부 정복전쟁을 통해 자신들의 영역을 넓히려고 했습니다. 일본의 정복야욕을 대표하는 전쟁은 1592년에 발발한 임진왜란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특히 조선이라는 국가가 위치한 한반도는 반도국가이지만.. 밀리터리 2018. 2. 12. 더보기 ›› 역사학자들이 말하는 조선이 망한 진짜 이유 3가지 조선이라는 국가는 한반도에 존재했던 한민족의 마지막 왕조국가였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근대화와 침략으로 인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는데요. 역사학자들이 말하는 조선이 망한 진짜 이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득권층인 양반들의 권력독점 조선 건국 당시 핵심세력은 이성계를 지원하던 '신진사대부'들이었습니다. 또한 '신진사대부'들은 고려 말기 권문세족에 대항했던 세력이기도 했는데요. 조선이 건국되고 '신진사대부'라고 불리는 양반들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권력의 재분배는 조선 말기까지 이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즉, 기득권층이라고 불리는 양반들의 생각은 조선 말기에 접어들어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폐쇄적이었다고 하는 것인데요. 양반들의 폐쇄적인 생각은 변화되는 세계 정세에 신문물을 받아들아들이지 않았고 이는.. 밀리터리 2018. 2. 6. 더보기 ›› 반응형 이전 1 2 3 4 ··· 1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