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한국전쟁 발발 이후 국군이 육지에서 최초로 승리한 전투

똥베이런 2018.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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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발발 이후 국군은 북한의 대규모 공세에 의해 후퇴에 후퇴를 거듭했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 국군이 육지에서 최초로 승리한 전투인 '동락리 전투'에 대해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동락리 전투는 1950년 7월 5일부터 7월 8일 까지 충청북도 음성군 무극리 일대에서 국군 6사단 7연대가 북한군 15사단 48연대를 상대로 승전한 전투입니다. '동락리 전투'는 전선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당시 동락초등학교의 여교사 '김재옥' 여사의 제보로 인해 승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1950년 7월 5일 6사단 7연대가 충청북도 음성군 무극리 일대에서 이천시 장호원읍을 공격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 홍천-춘천 전투에서 선전한 6사단을 제외하곤 국군 전력은 후퇴를 하면서 재정비를 하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후퇴를 하면서 재정비를 진행하고 있었던 국군 8사단이 7월을 기준으로 내륙지방을 방어할 수 있는 전력을 정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력을 정비한 8사단 사령부는 7연대에 지시하여 이천시 장호원읍을 확보하여 적을 저지하도록 명령했다고 하는데요.



국군 6사단 7연대는 예정대로 무극리로 이동을 진행했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7연대 1대대는 북한군 15사단 48연대와 대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7연대 2대대는 무극리 인근 부용산을 선점하여 북한 15사단 48연대의 진출로를 사전에 차단했다고 합니다. 3대대 역시 북한군 48연대 정찰대를 사살한 후 북한군의 역습으로 포위 당할 위기에 놓이자 무극리 인근 무천리에 진지를 구축했다고 하는데요.



북한군 15사단 48연대는 이 전날 전투로 국군이 무극리에서 완전히 철수했을 것이라고 착각했고 정찰을 소홀히 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2대대가 점령하고 있었던 부용산에 동락초등학교 여교사 '김재옥'이 북한군이 동락초등학교에서 숙영을 하고 있다는 제보를 했다고 합니다. 이에 6사단 7연대는 새벽에 동락초등학교를 기습했고 북한군 15사단 48연대는 기습공격에 놀라 북쪽으로 후퇴했다고 합니다.



'동락리 전투'의 승리로 인해 북한측 1,000명이 전사했으며 대량의 무기를 노획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동락리 전투'는 한국전쟁 개전 이래 국군이 최초로 거둔 육상전에서의 승전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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