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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이산가족들의 북한에 있는 가족들의 안부를 자주 물을 수 있는 이유

똥베이런 2018.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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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휴전 이후 남한과 북한이 분단되면서 수 많은 이산가족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때문에 한국전쟁은 한국의 근/현대사 중 가장 비극적인 역사로 기록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데요. 한국의 이산가족들이 북한에 있는 가족들의 안부를 자주 물을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000년 대까지만 해도 한반도에 있는 '이산가족'들이 생존해 있는지 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수 많은 어르신들은 한국전쟁 당시 헤어진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이산가족'으로 등록하여 가족들과 재회를 하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남한과 북한에 이산가족이 있는 어르신들은 한국전쟁 이전 일제강점기 시절 태어나신분들로 대체적으로 대부분 고인이 되셨다고 합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남한에 있는 '이산가족'이라는 개념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남한에 있는 '이산가족'들은 대부분 북한 '고난의 행군' 당시 탈북한 북한 주민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실제로 남한에 정착한 후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남한으로 데려오기 위해 브로커를 섭외하기도 한다고 하는데요.



탈북자들은 중국 국경 일대 뿐만 아니라 파주 인근에서도 신호만 잘 잡히면 비교적 가까운 지역의 경우 가족들과 통화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중국 통신사의 경우 국제전화를 통해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 통화를 하기도 한다고 하는데요.



통화 뿐만 아니라 한국에 있는 '이산가족'들은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대북송금을 통해 돈을 보내주기도 한다고 합니다. 한국의 이산가족들은 다양한 루트를 통해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물질적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부분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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