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 아들이 평생 친일파로 살아야만 했던 이유
1909년 10월 25일 중국 하얼빈 기차역에서 대한의군 참모총장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습니다. 민족의 영웅 안중근의 아들이 평생 친일파로 살아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939년 10월 16일 안중근의 아들 안준생은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인 이토 분키치에게 사죄를 합니다.
조선호텔에서 안준생이 이토 히로부미의 둘째 아들 이토 분키치를 만나 아버지를 대신해 사죄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죄한 후 안준생은 박분사 방문에 대해 총독부 기관지인 경성일보는 안준생의 사과문을 신문지에 실어 내보내게 되었습니다. 보도 내용은 '망부의 사죄는 보국의 정성으로 이토공 영전에 고개를 숙이다, 운명의 아들 안준생'이라는 제목으로 7면 메인에 사진과 함께 내보냈는데요.
안중근은 사실 아들 2명과 딸 1명이 있었고 큰 아들 안분도는 어린 시절 길가다가 행인이 준 과자를 먹고 사망했으며 안분도가 먹은 과자에는 독이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둘째 아들 안준생은 누나 안현생, 어머니 김아려와 함께 중국 상하이 일대를 돌아다니며 힘겨운 삶을 살았다고 하는데요. 누나와 어머니를 책임져야만 했던 안준생은 일본의 감시와 탄압에 의해 굉장히 힘들게 살 수 밖에 없었고 굶기는 일쑤였다고 합니다.
안준생은 성인이 되서도 직장을 구할 수 없었고 안중근의 동료나 독립운동가들 누구도 독립군 장군 안중근의 가족들을 돌봐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너무 힘든 생활에 힘이 부쳤는지 안준생은 일본 경찰에 의해 조손 총독 미나미 지로와 이토 분키치 앞에 끌려오고 거기서 변절 선언과 사죄를 요구받게 되는데요.
안준생은 일본의 협박과 굶주린 삶에 굴복했고 박문사(남산 장충단에 있는 절)에서 공개적으로 이토 분키치에게 아버지의 잘못을 머리숙여 사죄했다고 합니다. 또한 안준생은 일본 곳 곳에 아버지의 행동을 공개 사죄를 지속했다고 하는데요. 안준생은 미나미 지로의 양아들이 되어 용돈을 받으며 살다 용돈을 모은 돈으로 약국을 차렸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백범 김구'는 안준생을 변절자-민족반역자로 규정하고 중국측에 안준생을 체포해 교수형에 처하라고 부탁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중국측은 안준생 체포에 대해 실행하지 않았으며 안준생은 가족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생활했다고 합니다. 역사 소설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에는 실제 안중근의 아들 안준생이 적은 항변이 적혀 있다고 합니다. 안중근의 아들 안준생은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변절 할 수 없었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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