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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100

한민족 역사 상 단독 전력이 적의 본진을 쑥대밭으로 만든 전투 한국 역사 상 단독전력이 적진을 쑥대밭으로 만든 전투는 바로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이 부산포를 공격한 '부산포 해전'입니다. 한국 역사 상 단독전력이 적진을 쑥대밭으로 만든 전투인 '부산포 해전'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은 일본 수군과의 소, 대규모의 모든 전투에서 승리하며 전세를 역전시키고 있었습니다. 또한 일본 수군은 '한산도 대첩'에서 거의 몰살당하다시피 대패를 당했기 때문에 웬만하면 수군을 출동시키는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임진왜란 당시 '한산도 대첩' 이후 일본 본국에 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나의 명령이 있기 전까지 '조선 수군'과의 전투를 진행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즉, '한산도 대첩'으로 인해 일본은 조선 수군과 해전을 꺼려했고 남.. 밀리터리 2017. 12. 15.
이순신 장군의 가문이 한국인들에게 존경받아야 하는 이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조선 선조 시절 무관으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를 지냈고 임진왜란 발발 이후에는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되어 민족을 구한 영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현대 한국인들에게 이순신 장군이라는 인물은 우리가 일본 국적이 아닌 한국 국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런데 2014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언론사 중 하나인 국민일보에서 단독으로 기사를 하나 공개했습니다. 기사 내용은 이순신 장군의 13대 종손이 일제강점기 시절 항일무장투쟁을 했다는 단독 보도였는데요. 기사 내용으로는 이순신 장군의 13대 종손인 백암 이종옥(1887~1941) 선생이 항일무장투쟁을 벌였다는 사실인데요. 민족문제연구소가 증거로 보여준 증거로 1919년 6월 21일 자 신한민보 기사.. 밀리터리 2017. 12. 10.
원균은 왜 한민족 역사 상 최악의 졸장이 되었을까? '원균'은 조선 선조 당시 활동했던 무인으로 임진왜란 발발 당시에는 경상우도(경상북도) 수군을 책임지던 '경상우수사'였다고 합니다. 또한 '원균'은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백의종군하자 제2대 삼도수군통제사를 재직하였는데요. 원균은 왜 한민족 역사 상 최악의 졸장이 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원균은 임진왜란 발발 당시 경상우수군을 출동시켜 추가로 한반도에 상륙하는 일본군을 차단시킬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원균은 일본군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경상도 방어선을 보고 수군을 해산시키게 이르는데요. 국내 역사학계에서는 임진왜란 발발 초기 원균이 이끌던 '경상우수군'이 초기에 대처를 잘했다면 조선 전역이 폐허가 되지 않았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원균이라는 지휘관이 당시.. 밀리터리 2017. 12. 7.
전 세계에서는 '임진왜란'을 어떻게 부르고 있을까? 임진왜란은 1592년 '임진년'에 왜적이 벌인 '난동'이라고 해서 '임진왜란'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본격적인 전쟁 기간은 2년에서 2년 반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전 세계에서는 '임진왜란'을 어떻게 부르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전 세계 인터넷 백과사전 역활을 하는 '위키피디아' 기준으로 임진왜란을 '1592년 일본의 조선 침공'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동아시아사 교과서에는 임진왜란을 '임진전쟁'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하는데요. 일본 일본에서는 임진왜란을 전통적인 일왕의 국호를 따서 '분로쿠의 역', '케이초의 역'이라고 불르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임진왜란을 표현하는 단어로 히데요시가 중국에 들어가려는 시도를 했다고해서 '카라이리'라는 단어로도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 밀리터리 2017. 11. 28.
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피난은 과연 신의 한수였을까?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이후 조선 조정은 '선조'의 의도대로 수도인 '한양'을 버리고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또한 선조의 피난으로 인해 한양을 점령한 일본군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는데요. 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피난은 과연 신의 한수였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신립의 충주방어선이 뚫리자 조정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을 버리고 피난 길에 올랐습니다. 당시 일본은 전국시대가 막 끝난 후였고 일본은 전쟁 도중이라도 군주가 잡히면 전쟁이 끝나는 시스템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자신들의 시스템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조선을 침략한 일본측은 한양을 점령한 후 도망간 선조를 찾기 위해 북진을 감행했는데요. 하지만 '선조'는 광해군을 '왕세자'로 책봉한 후 광해군으로 하여금 전쟁을 진행하라.. 밀리터리 2017.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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