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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100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국왕 '선조'는 왜 무능한 군주가 되었을까? 선조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14대 국왕으로 본명은 '이연'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국왕 '선조'는 왜 무능한 군주가 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조는 사실 임진왜란 전란기와 비전란기의 평가가 확실하게 갈리는 군주로 임진왜란 발발 직전까지만 해도 국란을 잘 극복하고 있었던 명군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선조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그의 행동으로 인해 최악의 군주로 낙인찍혀버렸는데요. 실제 선조는 임진왜란의 임팩트가 너무나 크다보니 암군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합니다. 그가 임진왜란 당시 했던 행동은 당시 조선 최강의 명장이라고 불렸던 '신립'이 탄금대에서 전멸당하자 그는 평양을 거쳐 몽진(피신)을 감행하게 되는데요. 실제 그는 몽진(피신) 도중에도 "내가 죽어도 천자의 나라에서 죽겠.. 밀리터리 2017. 11. 18.
'권율'장군이 임진왜란의 영웅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 권율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도원수를 지낸 인물로 임진왜란 최고의 명장 중 한 명입니다. '권율'장군이 임진왜란의 영웅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임진왜란 발발 초기 한양을 점령한 일본군이 마저 점령하지 못한 호남을 점령하기 위해 3만 군대를 동원하여 호남을 공략했습니다. 하지만 일본군은 권율 장군의 조선 정규군과 호남에서 올라온 조선 의병들로 인해 호남 공략을 실패하게 되는데요. 이로 인해 호남은 무사할 수 있었고 일본군은 호남 공략을 포기하게 됩니다. 또한 한산도 대첩과 더불어 임진왜란 당시 전세를 바꾼 행주산성 대첩 역시 권율 장군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행주산성 전투는 아시다시피 권율 장군이 이끄는 관군 및 의병연합 4,000명이 30,000만 명의 .. 밀리터리 2017. 11. 18.
임진왜란 당시 일본측이 예상하지 못한 실수 4가지 임진왜란은 1592년 5월 23일부터 1598년 12월 16일까지 조선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동북아 최초의 국제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일본측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으로 인해 일본으로 철수하면서 전쟁은 끝이 나게 되었는데요. 임진왜란 당시 일본측의 예상하지 못한 실수 4가지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조선 수군의 존재 임진왜란 당시 일본측은 조선 수군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또한 일본은 조선 침공 이후 군량미를 비롯한 군수물자를 이동하는데 있어 육로가 아닌 바닷길을 이용하려고 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일본은 대량의 군량미를 옮기는 과정에서 일일이 조선 수군에게 이동로를 차단당하면서 큰 곤욕을 치루게 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존재를 미리 파악하.. 밀리터리 2017. 11. 3.
이순신 장군이 덕장이라는 면모를 보여주는 기록 3가지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민족을 구한 전설적인 영웅입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명장이기 전에 남다른 덕장의 면모를 보여주며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이순신 장군이 덕장이라는 면모를 보여주는 기록 3가지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신분에 상관없는 공적기록 이순신 장군의 승첩 장계에는 병사들의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두 일일히 이름을 적어 전공을 기록하여 장계를 올렸다고 합니다. 또한 사망자 역시 승첩장계에 이름을 올려 그의 가족들이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 하는데요. 이 때문에 백성들과 병사들은 이순신 장군을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존경하여 반역을 할 생각을 품지 않았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통제영으로 피난간 백성들 임진왜란 도중 백성들은 왜군들로부터 피난을 다니며 .. 밀리터리 2017. 11. 2.
임진왜란 당시 조선 최정예 병력이 '탄금대'에서 전멸당한 이유 '탄금대 전투'는 1592년 조선 충청도 충주 탄금대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최정예 병력이 '탄금대'에서 전멸당한 이유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현대 한국인들은 임진왜란 당시 '탄금대'에서 조선 정규군이 일본군에게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전멸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 역사기록을 살펴보면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은 '탄금대'에서 일본군에게 힘을 한 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요. 실제 '탄금대 전투' 당시 투입 된 조선군은 최정예 병력으로 북방에서 여진족을 상대로 허구헌 날 전투를 했던 병력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신립의 전략적 오판과 더불어 기상 악조건으로 전멸당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데요. 실제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신립은 기마대의.. 밀리터리 2017.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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