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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은 왜 한민족 역사 상 최악의 졸장이 되었을까?

똥베이런 2017.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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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은 조선 선조 당시 활동했던 무인으로 임진왜란 발발 당시에는 경상우도(경상북도) 수군을 책임지던 '경상우수사'였다고 합니다. 또한 '원균'은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백의종군하자 제2대 삼도수군통제사를 재직하였는데요. 원균은 왜 한민족 역사 상 최악의 졸장이 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원균은 임진왜란 발발 당시 경상우수군을 출동시켜 추가로 한반도에 상륙하는 일본군을 차단시킬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원균은 일본군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경상도 방어선을 보고 수군을 해산시키게 이르는데요.



국내 역사학계에서는 임진왜란 발발 초기 원균이 이끌던 '경상우수군'이 초기에 대처를 잘했다면 조선 전역이 폐허가 되지 않았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원균이라는 지휘관이 당시 상황파악만 잘 하고 있었다면 일본군 상륙 이후 조선 육군은 방어선을 구축 할 시간을 벌 수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원균은 그러지 못했고 이순신이 백의종군하자 제2대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했지만 그 역시도 '칠천량 해전'으로 최악의 병크짓을 저지르게 되는데요.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원균이 '경상우수사' 당시 자침(배를 스스로 가라 앉히는 것) 70척에서 100척으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즉, 원균은 칠천량 해전의 피해까지 합쳐 최대 200여 척의 전투선을 순삭시켜버린 인물이라는 것인데요. 이러한 원균의 병크짓이 너무나 어이없는 수치이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들디 존재하지만 조선왕조실록 뿐만 아니라 다른 기록에서 확인되고 있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원균이 한민족 역사 상 가장 최악의 졸장이 된 것은 비겁한데다 능력도 없었고 조선측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기 때문인데요. 원균의 사례를 보면 전쟁에서의 '지휘관'의 능력과 판단은 전쟁의 판도를 바꾸는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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