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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피난은 과연 신의 한수였을까?

똥베이런 2017.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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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임진왜란 발발 이후 조선 조정은 '선조'의 의도대로 수도인 '한양'을 버리고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또한 선조의 피난으로 인해 한양을 점령한 일본군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는데요. 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피난은 과연 신의 한수였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신립의 충주방어선이 뚫리자 조정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을 버리고 피난 길에 올랐습니다. 



당시 일본은 전국시대가 막 끝난 후였고 일본은 전쟁 도중이라도 군주가 잡히면 전쟁이 끝나는 시스템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자신들의 시스템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조선을 침략한 일본측은 한양을 점령한 후 도망간 선조를 찾기 위해 북진을 감행했는데요.



하지만 '선조'는 광해군을 '왕세자'로 책봉한 후 광해군으로 하여금 전쟁을 진행하라는 명령만 내리고 자신은 의주로 피신을 감행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선조는 의주에 도착했고 결국 일본측은 선조를 잡지 못했고 전쟁은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는데요. 



의주에 도착한 선조는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 지원병을 끊임없이 요청하여 결국엔 명나라로부터 원군을 지원받았습니다. 그리고 명나라가 1차적으로 원군을 보냈지만 전멸당하자 명나라는 대규모 병력을 조선에 파병했고 조선군과 연합하여 전세를 역전시켰습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의주로 피신하지 않았다면 조선은 일본에 편입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고 합니다. 당시 선조가 백성들을 이끌고 피난 길에 올랐다면 역사적 평가가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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