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임진왜란100 해외 군사전문가들이 평가한 이순신 장군이 위대한 이유 7가지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이라는 국가를 구한 민족의 영웅으로 해외에서는 위대한 제독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합니다. 국내 군사전문가들이 아닌 해외 군사전문가들이 말하는 이순신 장군이 위대한 이유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국왕의 시기 임진왜란 당시 기록된 조선왕조실록과 징비록 등의 기록을 보면 당시 조선의 국왕이었던 선조가 이순신 장군을 시기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선조의 시기에도 조선 조정에 충성하며 자신의 역활을 수행했다는 점에 있어서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특히 해외 군사전문가들은 2번째 백의종군 이후의 전투인 명량해전 당시 조선 수군이 승리한 부분에 있어서 아직도 의문점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빈틈없는 군율 임진왜란 당시 기록서를 보면 조선 수군의 병사.. 밀리터리 2017. 12. 27. 더보기 ›› 임진왜란 당시 조선수군이 사용했던 대표 전략전술 5가지 1592년에 벌어진 임진왜란 당시 조선이라는 나라를 구한 조선수군이 사용했던 대표적인 전략전술 5가지에 대해 소개해드릴텐데요. 이는 저의 개인적인 주장이며 공식적으로 발표된 내용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추가로 비난 또는 욕설은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학익진 전법 학익진 전법은 이순신이 이끄는 전라좌수군을 포함하여 조선 수군이 연합함대를 구축하면서 한산도 인근에서 일본 수군을 박살낸 전법입니다. 조선 수군의 전법에서도 가장 유명한 전법이며 학익진 전법으로 인해 일본 수군이 한반도 남해안 장악권을 상실해버렸으며 조선의 반격을 시작을 알리는 조선 수군의 대표 전법입니다. 일자진 전법 조선 수군이 기본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전법으로 일자로 뱀처럼 쭉 서서 적을 화포로 공격하는 전법입니다. 대표적으로 왜군의 본진.. 밀리터리 2017. 12. 25. 더보기 ›› 한국의 철천치 원수라고 불러야 하는 일본인 '시마즈 요시히로' 시마즈 요시히로는 사츠마 시마즈가의 17대 당주로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과 의병조직들 사이에서도 악명이 높았던 왜군 장수였다고 합니다. 시마즈 요시히로는 조선 수군이 완전히 박살난 칠천량 해전을 주도했던 인물이었고 결국 조선 수군 연합함대를 격파했습니다. 한국의 역사학계에서는 정유재란이 발발한 제일 결정적인 이유가 칠천량 해전에서의 패배로 평가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일본에서도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3대 대첩이라고 할 수 있는 사천성 전투에서 시마즈 요시히로가 1만 명의 병력을 지휘하여 20만 명의 조명연합군을 대적하여 승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 역사서에는 노량해전 당시를 기록하고 있는 내용이 있다고 하는데요. 그 내용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으로 인해 철수를 준비하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조명.. 밀리터리 2017. 12. 24. 더보기 ›› 일본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비밀 7가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하면서 대륙 정벌의 욕망을 가지고 조선을 침공하여 임진왜란을 발발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류성룡이 기록한 '징비록'에 기록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비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관백의 오해 '징비록'에 의하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보고를 받는 관백의 자리에 올랐다고 합니다.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천황에게 상소를 올리기 전의 보고서를 모두 받아봤다고 하는데요. 관백이라는 자리는 일본의 수상과 같은 직책이라고 합니다. 출생의 비밀 '징비록'에 기록되어 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중국에서 출생하여 일본으로 넘어간 중국인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나가의 핵심 전력인 오다 5대장 중 한명인데요. 도요토미 .. 밀리터리 2017. 12. 23. 더보기 ›› 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만주로 진군하지 않은 이유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이후 일본군은 빠른 진군 속도로 경상도 일대를 점령하고 한양을 함락시켰습니다. 또한 당시 조선의 임금이었던 선조는 백성들을 버리고 의주로 피신을 하게 되는데요. 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만주로 진군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잡기 위해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는 한양에 병력을 주둔시키고 북진했습니다. 또한 가토 기요마사는 함경도에 주둔하면서 당시 조선의 왕자 임해군을 포로로 잡기도 했었는데요. 하지만 일본군은 함경도 일대에 자주 등장하는 여진족과의 전투를 몇 차례 진행했고 여진족의 마상 공격에 여러차례 피해를 당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본군 선봉장인 가토 기요마사는 대륙진출의 맛보기로 여진족의 성 한 개를 점령하고 여진족과 잦은.. 밀리터리 2017. 12. 18. 더보기 ›› 반응형 이전 1 2 3 4 5 6 7 8 ··· 2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