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북한의 기본적인 시스템을 모두 붕괴시킨 결정적인 사건

똥베이런 2017.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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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모든 시스템을 붕괴시킨 결정적인 사건은 1995년부터 1998년까지의 '고난의 행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고난의 행군'은 북한이 현재의 막장 형태로 진화한 결정적인 사건이라고도 하는데요. 북한에서 실행한 '고난의 행군'이 북한의 기본적인 시스템을 망가트린 결정적인 사건이라는 것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라고 하는 것은 김일성이 일제강점기 시절 항일투쟁을 하는 것을 '고난의 행군'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또한 한국전쟁 이후 김일성이 독재왕조를 만든 '8월 종파사건' 또한 '고난의 행군' 이라고 부른다고 하는데요.



1995년부터 1998년까지 북한에서 실행한 '고난의 행군'은 실질적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배급을 하는 시스템을 없애버린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고난의 행군'이전 북한은 사람의 하루 평균 쌀 권장소비량 600g을 넘는 620g을 배급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1980년대 들어 북한 내부의 농사상황이 좋아지지 않자 배급이 확 줄기 시작했고 '고난의 행군' 시기에 들어 배급이 확 줄어들었습니다.  



사회주의의 가장 중요한 시스템인 배급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 당하자 굶어죽은 사상자들이 숙출했다고 하는데요. 심지어 어른을 물론, 어린아이들까지 영양실조 상황으로 매우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합니다. 특히 '고난의 행군' 당시 살아남은 사람들 역시도 영양부족으로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었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 당국은 배급제를 제대로 실시하지 않은 상황에서 '고난의 행군'을 극복해야 한다며 농사, 노동에 주민들을 동원하였는데요.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이 도저히 배고파서 출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되자 북한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식량을 구해다 먹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고난의 행군' 당시 배급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농사, 노동에 동원 된 사람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철도는 움직이지 않았고 집배원들도 편지를 배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은 자체적으로 '장마당'이라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도입하여 자급자족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는데요. '고난의 행군'으로 인해 북한은 내부적으로 완전히 붕괴되었고 이때부터 탈북자와 장마당이 시작되는 결정적인 사건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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