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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저승사자 '김원봉'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유

똥베이런 2017.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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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봉은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의 단장으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사에서 손꼽히는 영웅으로 평가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 때문에 현대 한국인들은 일제의 저승사자라고 불렸던 김원봉을 잘 모르는 것일까요? 일제강점기 시절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의열단장 김원봉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김원봉은 일제에 대항하는 대한독립운동조직 중에서도 비밀결사라고 불리는 의열단의 단장이었습니다. 또한 김원봉은 일제가 현재 한화가치로 320억 원이나 되는 현상금을 걸 정도로 거물이었다고 합니다.



2차세계대전에서 일제가 패망하자 중국 등지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이 한반도로 귀국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김원봉 역시 해방된 조국으로 귀국하여 통합정부 추진에 많은 힘을 썼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하지만 결국 김원봉은 1948년에 김구, 김규식과 함께 북한으로 건너갔고 그대로 북한에 잔류하면서 월북인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김원봉의 여동생인 김학봉 씨에 의하면 월북전에 쓴 김원봉의 자서전에 의하면 김원봉이 월북한 이유로 해방 이후 친일파들의 탄압에 못 이겨 월북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특히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아무래도 김원봉이 월북한 가장 큰 이유를 추측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추측하는 내용으로는 친일파들이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권세를 누리던 것에 대해 매우 큰 절망을 느낀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이라고 합니다.


김원봉은 1948년 9월에 북한 단독으로 정권을 수립하면서 북한 내부 서열 7위에 해당하는 국가검열위원장에 올랐다고 합니다. 



또한 한국전쟁 이후 1954년에 남파 간첩단 4명이 체포 된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사 결과 이들은 김원봉이 직접 지시하여 남한의 경제혼란과 선거방해 목적으로 남파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1956년에 북한에서 터진 8월 종파사건의 계기로 중국의 연안파가 숙청 된 후 김원봉은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결정적으로 김원봉은 김일성에 의해 형무소로 끌려서 울분을 참지 못하고 청산가리를 입에 털고 자살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의열단장 김원봉은 독립운동사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했던 인물이고 건국 훈장도 받지 못한 인물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는 김원봉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민족의 독립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싸웠지만 공산주의자가 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진 안타까운 인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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