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중국 역사 상 가장 인자한 국모로 평가받는 황후

똥베이런 2018. 6. 3.
반응형


주원장은 중국 역사 상 가장 성공한 인물로 노예로 시작해 황제가 된 인물입니다. 하지만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은 명나라 건국 이후 수 많은 신하들을 숙청하면서 토사구팽의 대명사라고도 불리고 있는데요. 중국 역사 상 가장 인자한 국모로 평가받는 황후인 '효자고황후 마씨'에 대해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주원장은 아시다시피 명나라를 건국하기 전 홍건적이 봉기하자 홍건적에 들어가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홍건적의 우두머리였던 '곽자흥'의 수하로 들어가면서 세력을 넓혀갔다고 하는데요.



'곽자흥'은 홍건적의 우두머리로 홍건적 중에서도 대규모 군세를 자랑했고 그 위용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주원장의 부인이었던 '효자고황후 마씨'는 '곽자흥'의 양녀로 '주원장'이 '곽자흥'의 수하에 있을 때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실제 기록에 의하면 '주원장'이 '곽자흥'의 미움을 사 감금당했을 당시 남편이 자주 굶는 모습을 보고 몰래 '찐빵'을 훔쳐 가슴에 화상을 입으면서 먹을 것을 가져다 주었다고 합니다. 또한 '마 황후'는 주원장이 말린 고기를 좋아해 항상 밥 상에 올려주었지만 정작 자신은 배부르게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주원장은 곽자흥이 사망하자 곽자흥 세력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진우량을 격파하면서 명나라를 건국하기에 이르는데요. 명나라 건국 이후 주원장은 신하들에 대한 의심이 많아 지기 시작하면서 숙청에 숙청을 거듭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 황후'는 주원장이 숙청을 하려고 하면 죽이면 안된다고 설득했고 이로 인해 많은 신하들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마 황후'는 백성들의 어려움 삶을 생각하며 매우 검소하게 황궁의 살림을 꾸려나간 것으로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특히 '마 황후'의 사망 당시의 이야기는 중국에서도 매우 유명한 일화로 알려져 있는데요. '마 황후'는 죽음을 앞두고 있을 당시 주원장이 매일 어의를 보냈지만 어의를 만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 황후'가 어의를 만나지 않은 것은 '마 황후'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어의에게 물어 어의를 처형할까봐 걱정이 되서였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마 황후 죽음 이후 약 일주일 간 음식을 먹지 않았으며 주원장은 왕비를 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랭킹월드 추천 글 링크>

원나라가 아시아에서 겪은 굴욕 3가지

몽골 제국이 중국 대륙의 논밭을 목장으로 바꾸지 않은 이유

몽골 제국이 점령하지 못한 국가 2개

살수대첩 당시 살아남은 수나라 병사 2,700명의 진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판옥선(귀선)'을 두려워 했던 이유


이 글이 재미있거나 유익하셨다면 로그인이 필요없는

아래에 있는 <공감> 버튼 한 번 눌러주세요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