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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수대첩 당시 살아남은 수나라 병사 2,700명의 진실

똥베이런 2018.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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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수대첩은 제2차 고구려-수나라 전쟁 당시 살수(현재의 청천강)에서 일어난 회전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살수대첩 당시 살아남은 수나라 병사 2,700명에 대한 진실에 대해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수나라의 정사 기록서인 '수서'에 의하면 제2차 고구려-수나라 전쟁 당시 살수에서 살아서 중원으로 돌아온자가 2,700명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수나라 멸망 이후 기록된 당나라 기록서인 '구당서'에도 똑같이 기록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제2차 고구려-수나라 전쟁 당시 수양제는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성을 직접 타격하기 위해 '별동대' 30만 5천 명을 편성했고 우중문, 우문술에 의해 움직이게 했습니다. 그리고 수양제는 수나라 수군을 황해를 거쳐 평양성으로 출동시켰고 이른바 '수륙병진작전'을 통해 평양성을 함락시키고자 했는데요. 하지만 수나라 수군을 지휘하던 내호아는 욕심을 부렸고 고구려 수군의 유인 작전에 걸려 평양성 일대에서 궤멸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문술, 우중문은 '을지문덕 장군'의 거짓 항복에 의해 철수를 내렸고 철수 과정에서 살수(청천강)에서 궤멸당하게 되는데요.



수나라군이 살수의 뚝이 무너지자 우왕좌왕했고 후방에 있던 우둔위 장군 신세웅이 필사적으로 고구려군의 공격에 저항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신세웅이 지키고 있던 후방 역시 고구려군에게 붕괴되었다고 합니다. 실제 수나라 역사기록서인 '수서' 의하면 살수에서 살아돌아온자 중 2,700명에 대한 기록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수나라 '수서'에 의하면 살수에서 살아온 2,700명은 하루만에 청천강에서 압록강까지 하룻밤 사이에 도망쳐왔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데요. 청천강에서 압록강까지의 거리는 450리로 하루 종일 죽기살기로 달려야만 가능한 거리라고 합니다.



즉, 살수대첩 당시 살아남은 수나라 병사 2,700명은 살기 위해 갑옷, 창 등을 모두 던져버리고 필사적으로 수나라까지 도망쳤다고 볼 수 있는데요. 수나라로 돌아간 2,700명이 짐이 되는 것을 버리지 않고 도망쳤다면 고구려군에 의해 전멸당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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