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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일본측이 예상하지 못한 실수 4가지

똥베이런 2017.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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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은 1592년 5월 23일부터 1598년 12월 16일까지 조선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동북아 최초의 국제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일본측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으로 인해 일본으로 철수하면서 전쟁은 끝이 나게 되었는데요. 임진왜란 당시 일본측의 예상하지 못한 실수 4가지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조선 수군의 존재


임진왜란 당시 일본측은 조선 수군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또한 일본은 조선 침공 이후 군량미를 비롯한 군수물자를 이동하는데 있어 육로가 아닌 바닷길을 이용하려고 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일본은 대량의 군량미를 옮기는 과정에서 일일이 조선 수군에게 이동로를 차단당하면서 큰 곤욕을 치루게 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존재를 미리 파악하지 못했던 것은 일본측의 가장 큰 실수로 평가되고 있다고 합니다.



선조의 비겁함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국왕이었던 선조는 임진왜란 직전까지는 비교적 괜찮았던 국왕으로 평가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선조는 임진왜란 발발 이후 당대 최강의 장군이었던 '신립'이 이끄는 조선 정예군이 탄금대에서 전멸 당하자 한양을 버리고 몽진(피난)을 하게 되었는데요. 일본은 역사적으로 우두머리를 잡으면 전쟁은 끝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한양을 점령하여 선조를 붙잡고자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본의 예상과는 달리 선조가 삼십육계 줄행량을 펼치며 의주로 도망가버렸죠.



의병 출현


임진왜란 발발 이후 당시 백성들은 일본군의 전쟁범죄로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고 합니다. 또한 당시 선조의 피난으로 인해 조선 백성들의 민심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선조가 광해군을 중심으로 분조를 결성하여 의병을 독려하고 민심을 다독이니 조선 전역에서 의병이 봉기했습니다. 실제 임진왜란 당시를 기록하고 있는 일본측의 <일본사>, <일본서기>, <태합기> 등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 의병의 게릴라는 일본군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고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즉, 조선 수군에 의해 식량부족을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측이 게릴라 전을 펼치는 조선 의병이 봉기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죠. 



조선의 식량난


임진왜란 당시 일본은 단 숨에 조선 한반도를 점령한 후 조선을 전진기지로 삼아 대륙으로 진출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의 식량난은 너무나 심각했다고 하는데요. 실제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하여 야사에 의하면 당시 호남 일대를 제외하고는 조선 전 지역이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일본은 조선의 식량난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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