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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13

냉전을 대표하는 베트남 전쟁이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된 이유 7가지 세계 전쟁사에서 미국이 최초로 패배한 전쟁으로 기록되어있는 베트남 전쟁은 세계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베트남 전쟁은 한국전쟁과 더불어 냉전시대를 대표하는 세계대전급 전쟁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본국으로 철수하자 베트남은 월맹에 의해 공산화되었으며 이는 세계적으로 많은 문제가 되었습니다. 참전용사대우문제 (한국)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의 동맹국 자격으로 참전한 한국은 국가적으로 많은 이득을 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박정희 유신정권은 유신 헌법에 군인 및 군무원, 경찰공무원에 대한 이중배상금지 규정을 통과시켜버렸습니다. 결국 2000년 대까지 와서도 베트남 참전용사에 대한 배상금을 푼돈이나 받게 된 것의 배경이라고 합니다. 미국 정치 및 사회 변화 베트남 전쟁 당시 미.. 밀리터리 2018. 1. 20.
대한민국과 전쟁했던 국가 4개 한국군은 한국의 정규군으로 일반적으로 국군이라고 통칭하며 육군, 공군, 해군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현재 헌법 상 한국군의 통수권자는 대통령으로 한국군은 국가 방위에 있어서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북한 (한국전쟁) 한국전쟁은 김일성의 북한군이 불법 남침을 감행하였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입니다. 한국전쟁은 사회주의권 세력과 자본주의권 세력이 한반도에서 치룬 전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북한은 국가로 규정하면 안되지만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기 때문에 포함시켰습니다. 또한 한국전쟁은 근간접적으로 물자지원, 병력 파병의 국가가 굉장히 많기 때문에 내전이 아닌 국제전으로 보는 성향이 있다고 합니다. 베트남 (베트남 전쟁) 한국군은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베트남 전쟁) 당시 전투병을 .. 밀리터리 2017. 12. 22.
베트남 전쟁이 한국에 끼친 영향 4가지 한국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베트남 전쟁의 명칭은 월남전이며 현재까지도 국군에서 만든 자료에서 월남전이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세계에서 베트남전쟁을 평가하기로는 더러운 전쟁(Dirty War) 또는 아편전쟁, 이라크전쟁과 더불어서 목적, 명분이 없는 전형이자 미국이 전투에서 이기고도 패배한 첫번째 전쟁이라고 평가한다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외화벌이 한국은 베트남 전쟁 참전으로 인하여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보았고 참전의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외화를 벌여들였습니다. 비록 베트남 전쟁은 패배한 전쟁이기는 하지만 당시 유신 정권은 새마을 운동을 앞세워 한국의 경제발전을 이룩해나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분명 유신 정권에서는 외화가 많이 필요했을텐데요. 한국군의 .. 밀리터리 2017. 6. 23.
베트남 전쟁이 참전용사들에게 잊을 수 없는 이유 3가지 한국은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에 주둔하던 중복 병력을 포함하여 약 30만 명의 국군 병력을 파병했다고 합니다. 베트남 전쟁 종전 이후 한국 국내에서 벌어졌던 베트남 전쟁 이후 논란들에 대해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인명피해 베트남 전쟁 당시에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군의 병력은 8년 간에 걸쳐 비전투 병력까지 30만 명이라는 많은 용사들이 참전했습니다. 또한 30만 명 중 5,000명 가까이 전사하거나 실종되었으며 7,000명이 부상당했다고 합니다. 이 문제는 유신 정권에서 이중배상금지법을 통과시키면서 유가족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샀고 국내에서도 유족들을 위로하는 형태가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이중배상금지 이중배상금지 법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악의 악법 중 하나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중배상금지법은 유신.. 밀리터리 2017. 6. 12.
현대 한국인들이 베트남 전쟁을 바라보는 관점 2가지 베트남 전쟁은 한국군 전투병력이 파병이 되었을 만큼 한국전쟁과 더불어 냉전을 세계대전급 전쟁입니다. 베트남 전쟁이라는 것이 2차세계대전 이후 체재대립이 얼마나 극심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전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전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관점 자주적인 통일 국가를 이룩하려고 했던 베트남 민족과 외세(프랑스, 미국 등)의 대결로 보는 구도입니다. 애초에 베트남 전쟁의 시작은 프랑스가 변화된 국제 정세를 무시하고 베트남을 계속 식민지로 유지하려고 하다가 시작된 것이라는 것인데요. 남베트남은 사실 상 프랑스가 만든 괴뢰국가에 불가하였으며 프랑스가 디엔비에누 전투의 패배로 인하여 베트남을 포기하고 철수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월남과 월북간에 합의되었던 1956년 남북통일총선거를 남베트남 정권이 거부하게 되.. 밀리터리 2017.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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