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국의 친구를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똥베이런 2017. 8. 15.
반응형


이라크 전쟁은 1990년 8월 2일부터 1991년 2월 28일까지 벌어진 이라크와 다국적군 사이의 전쟁입니다. 이라크 전쟁은 대체적으로 걸프만에서 벌어졌다고 해서 걸프전쟁이라고 부르는데요. 걸프전쟁은 이라크의 친미국가인 쿠웨이트를 강제 병합시키면서 벌어진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90년 8월 2일 새벽 이라크군은 30만 최정예 병력 30만을 투입해 쿠웨이트를 침공했고 쿠웨이트는 갑작스러운 침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결국 쿠웨이트군을 분산시킨 이라크군은 쿠웨이트의 국경을 차단하고 쿠웨이트의 수도인 쿠웨이티 시티를 공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소식을 들은 미국은 이라크에게 쿠웨이트에서 당장 철군할 것을 요구했고 국제연합에서도 이라크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국제연합의 철군시한은 1991년 1월 15일이었지만 이라크는 국제연합의 철수요구와 더불어 미국의 철수요구를 모두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이라크의 철군 거부에 1991년 1월 17일 미군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이 토마호크 미사일을 이라크에 폭격하면서 전쟁을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미군과 다국적군은 사막의 폭풍작전을 통해 이라크를 폭격했고 미 공군의 F-117, 토마호크 미사일의 공세, B-52의 39일 동안의 무차별 폭격으로 이라크는 초토화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라크 육군은 미군이 주력으로 사용하는 M1A1 에이브람스 전차들에게 녹아내렸고 거기다 A-10, AH-64(아파치 헬기)에게 전차 사단이 개박살났다고 합니다. 걸프전 당시 미1기갑사단, 제3기갑사단은 이라크 함부라이 전차사단과 만나서 전투를 치뤘다고 하는데 미군 전차 800대와 이라크군 300대 중 미군의 피해는 전사자 2명에 부상자 30명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이라크는 다국적군의 무차별 폭격과 장비 열세 등으로 거희 전멸했고 결국 쿠웨이트 수도인 쿠웨이트 시티를 탈환하면서 이라크는 패배했고 쿠웨이트는 나라는 되찾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쟁 이후 이라크는 경제제재 조치를 국제연합으로부터 받았으며 1,500억 달러라는 배상금까지 강제로 물게 되었다고 합니다.



걸프전 당시 이라크군은 60만 병력 중 7만 명의 사상자를 낳았으며 미군은 294명이 전사했다고 합니다. 특히 미 국방성의 발표 자료에 의하면 294명 중 145명은 사고로 인해 사망한 것이며 전투에서 전사한 인원은 149명, 오인사격 희생자 35명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고 합니다. 즉, 미국의 친구와 국제사회의 경고를 무시하면 이라크 꼴 난다는 교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랭킹월드 추천 글 링크>

2차세계대전 종전을 부르는 각 국의 명칭을 알아보자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가한 민족탄압 사건 '일장기 말소사건'

1945년 8월 15일 광복절하면 떠오르는 인물 5명

북한이 망하면 가장 환호 할 국가 5개

어쩌면 바뀔지 모르는 3차세계대전 시나리오


이 글이 재미있거나 유익하셨다면 로그인이 필요없는

아래에 있는 <공감> 버튼 한 번 눌러주세요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