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본인 신분을 낮춰 사병 묘역에 안장된 최초의 한국 장군

똥베이런 2017.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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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신 장군은 한국전쟁과 베트남 월남총사령관을 지내면서 해군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손원일 장군과 더불어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대한민국 국군 장군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채명신 장군은 평양 인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지내다가 한반도가 일제로부터 해방하자 월남하여 조선경비사관학교 5기로 장교 임관하여 군인으로써 활동했다고 합니다. 채명신 장군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육군본부 소속 백골병단이라는 게릴라 국군 부대를 지휘하며 한국전쟁에서도 활약했다고 합니다.



채명신 장군은 5.16 군사정변 중 5인 위원회 위원 중 1인이었지만 유신 헌법에 반대하고 박정희의 3선 개헌에 대한 직언과 비판을 했다고 합니다. 또한 채명신 장군은 4.19 혁명 이후 사회가 안정되면 민간인들에게 정치를 맡기고 군에 복귀하겠다는 다른 5.16 참여군인들과는 다르게 끝까지 군인으로 남았다고 합니다.



5.19 군사정변 이후 채명신 장군은 중장으로 예편되었고 다른 장성들과 같이 외교관으로 부임했다고 합니다. 외교관으로 생활하던 중 한국 정부와 국회에서 월남전 파병 승인안이 통과되자 채명신 장군은 파월한국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베트남 전에 참전한 한국군을 지휘하게 됩니다.



채명신 장군은 베트남에 있는 파월한국군을 지휘하면서 베트남 현지인들을 보호하는 보호정책을 펼쳤다고 하는데요. 덕분에 베트남 현지인들로부터 베트콩의 정보를 포함하여 첩보전을 입수하여 정확하고 빠르게 베트콩의 게릴라를 차단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한국전쟁에서 경험했던 경력으로 파월한국군이 전술 및 전투력 부분에서 큰 상과를 이루자 미군으로부터 독립 지휘권을 획득하는 성과도 이룩했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채명신 장군은 습한 베트남 기후에 무좀이나 습진으로 고생하는 병사들을 지휘관의 명령 하에 청결한 막사생활을 지시했다고 합니다. 특히 채명신 장군의 회고록에 의하면 채명신 장군은 파월한국군 장병들과 대단히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는데요.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파월한국군 전우회에서 채명신 장군은 큰 어르신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파월한국군은 미군이 미국 본토로 철수하자 한국군 역시 한국으로 철수를 하게 되었는데요. 채명신 장군은 파월한국군 장병들이 뭍혀있는 서울 현충원에 찾아가 그들을 참배했다고 합니다. 또한 채명신 장군은 "나를 파월 장병이 묻혀 있는 모역에 묻어달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채명신 장군 사후 이후 국방부 관계자들은 채명신 장군이 글로벌 네임드급이라는 이유로 장군 묘역에 안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채명신 장군의 자녀들은 고인의 유언을 지켜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고 채명신 장군은 국립서울현충원 2번 사병 묘역에 묻히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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