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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소련 기밀문서로 공개 된 김일성의 한국전쟁 계획안 3가지

똥베이런 2017.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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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해방 이후 한반도 이북을 통치하게 된 소련은 민주진영의 통치 영역인 남한 지역을 미수복 영토라고 판단하였고 북한을 먼저 공산화 시켰습니다. 소련은 북한을 공산화 시킨 후 남한을 점령해 공산화 시킨다라는 민주기지론을 주장하였다고 하는데요. 당시 남한의 이승만 정권은 무력으로 통일해야한다는 북진통일론을 주장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남한에는 전차 0대, 전투기 0대, 연습기만 10대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지원받은 소련제 T-34 탱크 242대와 전투기 170여기를 보유한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전력 차이는 김일성의 입장에서 한반도 적화통일의 구미가 당기는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를 적화통일 시킬경우


남한이 소련에 편입 될 경우 김일성은 소비에트 연방의 '까레야 공화국' 서기장이 된다. 만약 독립을 유지한 채 한반도가 공산 국가가 된다면 김일성은 적화통일 된 한국의 수령이 된다.



전쟁에서 북한이 패배했는데 땅을 잃지 않았을 경우


패배를 핑계로 패전의 책임을 박헌영을 비롯한 정적들에게 죄다 뒤집어 씌워서 전부 숙청하고 비록 반쪽짜리일지언정 북한의 수령이 된다. 결과적으로 이 계획안처럼 남,북한이 분단 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실제 1953년에 휴전협정이 체결 되자 김일성은 이걸 핑계로 1955년에 자신의 정적인 박헌영 등을 포함해 연안파와 소련파를 숙청했습니다. 다만 최용건은 김일성 자신을 대신 할 바지 사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숙청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전쟁에서 북한이 패배하고 땅마저 잃었을 경우


전쟁에서 패배하고 땅 마저 잃게 될 경우 김일성은 소련으로 망명해서 그곳의 군 수뇌부 중 한명이 되거나 중국 간도지방으로 패주해서 북한 임시정부를 설립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한반도를 다시 공산국가로 만들게 될 북한의 임시통치차의 직함도 겸하게 된다. 물론 이 계획은 김일성의 안위를 매우 위태롭게 할 수 있었겠지만 당시 북한의 군사력을 보면 남한과의 단독 전면전에서 도저히 북한이 질 것 같지가 않았을 것입니다.



김일성이 한국전쟁 계획 안을 보았을 때 김일성에게 불리한 카드는 거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김일성은 소련의 무기 지원과 중공의 병력 지원은 전쟁을 가속화 할 수 있었습니다. 김일성의 계획안을 보면 어느 누구나 전쟁을 일으켜도 전혀 손해 보지 않는 장사였던 셈인 것입니다.



당시 소련의 스탈린은 3차세계대전을 염려하였고 당시 중국의 경우 국공내전이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을 지원하기에는 곤란한 요소가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가막히게도 중국이 국공내전에서 우세를 굳히면서 1949년 10월 1일에 정식으로 건국을 선언했고 1950년 5월에는 전쟁이 종결되었습니다.


또한 소련의 경우에도 생각보다 미국에게 밀리지 않고 냉전을 굳혀지는 상황을 확인했는데요. 특히 1949년 6월에 소련이 핵 실험을 성공하면서 소련은 내부적으로 군사적인 자신감을 회복하였습니다. 1950년 1월에 미국의 애치슨 라인이 발표되면서 남한과 대만을 미국의 극동방위지역에서 제외했기 때문에 김일성은 계획대로 남침을 실행하게 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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