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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이 대단한 이유 6가지

똥베이런 2017.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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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조선 연합함대를 이끌며 왜군의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인물은 바로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으로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조선수군을 지휘했는데요. 결국 조선 수군은 칠천량에서 왜군의 기습으로 인해 전투기능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이 대단한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해상장악권 재장악


칠천량 해전의 대패 이후 명나라 역시 위협을 느끼고 명나라 수군 5,000명을 조선으로 급파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조선 수군은 명량해전의 승리로 인해 조선수군의 재건과 남해안에 대한 해상장악권을 왜군으로 되찾아 왔는데요. 군사전문가들 역시 명량해전의 승리로 인해 남해안의 해상장악권을 되찾아온 것에 대해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의 보급 재차단


명량해전의 패배로 인해 왜군은 남해안의 보급로를 다시 조선수군에게 차단당했습니다. 때문에 정유재란 당시 왜군은 조선에서 수성전 위주의 전투를 감행했다고 하는데요.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왜군의 보급선을 차단하여 왜군을 궁지로 다시 몰았던 전투라고 볼 수 있습니다.



히데요시의 사망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은 현재까지도 많은 설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사망설, 암살설 등 많은 사망설이 존재한다고 하는데요. 물론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노인이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해보는 것이지만 히데요시는 임진왜란 당시 명량해전의 대패의 소식을 듣고 화병으로 사망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개인적인 추측을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정예군이 아니었던 조선수군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한 이후 7년간 이순신 장군과 함께한 조선 수군 병사들은 도망가거나 칠천량에서 전사했습니다. 때문에 명량해전 개전 당시에는 기존 이순신 장군과 함께 했던 정예 조선 수군 병사들이 아니었다고 하는데요. 명량해전에 참여한 조선 수군의 병사들은 대부분 징병으로 충원한 병사들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역사서의 기록으로 인해 역사전문가들 역시 명량해전에서 도대체 어떻게 이겼는지 궁금해한다고 하네요.



왜군의 호남진출 재차단


왜군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호남 지방의 중요성을 깨닫고 정유재란 당시에는 호남부터 공략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명량해전 당시 호남 지방에 대한 상륙작전을 전개하려고 했던 왜군을 막아버린 것인데요. 즉, 조선 정규군을 포함한 의병 조직이 호남 일대에서 왜군과 전투를 하게 될 경우 왜군의 게릴라 공격을 방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선 수군의 재건


명량해전 이후 이순신 장군의 조선 수군은 도망간 조선 수군 병사들을 다시 모으거나 판옥선을 건조하여 조선 수군을 재건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노량해전에 참여한 조선 수군의 판옥선은 60척과 조선 수군 7,000명이었습니다. 조선 수군은 약 1년 동안 약 50척에 가까운 판옥선을 건조했다는 것인데요. 국내 역사전문가들은 명량해전 이후 1년 간 50척에 가까운 판옥선 건조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따름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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