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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연합군을 지원한 화교 특수부대 'SC지대'

똥베이런 2018.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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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한국에 거주하던 중국인 화교들은 국군과 연합군을 지원하기 위해 자원입대를 신청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연합군을 지원했던 화교 특수부대인 'SC지대'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중국인 화교들로 구성되어있던 'SC지대'는 대한민국 국군 제4863부대인 'HID' 소속의 부대였다고 합니다. 'SC지대'의 규모는 대략 200명 정도로 부대원 전체가 화교로 구성되어 있었던 '외인부대(정예부대)' 였다고 하는데요.



'SC지대'라는 뜻은 말 그대로 'Seoul Chinese'의 약자를 따서 SC라고 불렀으며 이들의 교육은 대만 '국민혁명군' 장교가 파견되어 군사훈련을 담당했다고 합니다. 당시 제2차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국민당의 장제스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한국에 장교를 파견하여 군사훈련을 도왔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이 과정에서 중국어로 소통해야하는 부분에 있어 '국민당군' 장교는 SC지대의 교육훈련을 전담했다고 합니다.



'SC지대'는 10주 간의 양성훈련을 받고 12명을 1개조로 육군방첩부대에 분산배치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70명 가량은 무장공작대원으로 전투가 벌어지는 전방 지역에 배치되어 중국군과 북한군 사이에서 한국어와 중국어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정보수집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1953년 한국전쟁 휴전협정체결 이후 'SC지대'는 전쟁이 끝남에 따라 부대가 해체되었는데 무장공작대원 생존자는 20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부 생존자들 중에는 군에 종사하여 중공군 포로 설득을 비롯하여 대북파트 중국어 파트를 담당하면서 심리전에 종사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한국인 국적이 아닌 외국인 국적으로 참전했기 때문에 보상을 받지 못했지만 이는 한국 참전용사들과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SC지대'는 1971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그 공로를 인정받아 부대원 53명이 종군기장을 받았고 1975년에는 10명이 보국포장을 받았다고 합니다. 외국인의 신분으로 남한의 자유를 위해 희생한 화교 출신 'SC지대' 부대원 모두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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