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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만으로도 적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 한국사 속 용장 8명

똥베이런 2018.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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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이라는 뜻은 '용감 무쌍한 장군'이라는 뜻의 줄임말로 사용되는 단어라고 합니다. 존재만으로도 적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 한국사 속 용장 8명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척준경


척준경은 한민족 역사 상 가장 강력한 무장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현대 한국인들에게는 소드마스터 척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척준경은 고려 왕조의 정식 기록서인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믿겨지지 않는 활약 상에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데요. 척준경은 실제로 혼자서 적 수 백명을 상대 할 수 있는 전설적인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징옥


이징옥은 조선 세종시기의 무관으로 세종대왕의 4군 6진을 실질적으로 만들어 낸 용장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징옥은 반란을 일으켜 전설적인 무예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역자로 낙인 찍히게 되었는데요. 실제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야사에서는 이징옥의 존재만으로도 북방 오랑캐라고 불리는 여진족들이 함부로 조선을 침략하거나 약탈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의민


이의민은 고려 무신시대의 황금기를 이끌어 낸 용장으로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서 권력의 정점을 찍은 인물입니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서는 이의민은 주로 도끼를 사용했고 그 실력이 매우 능숙했다고 기록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특히 이의민의 무력을 보여주는 기록으로는 1177년 5월 보향산에서 난을 진압했을 당시 눈에 화살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돌격하여 적들을 개박살 냈다는 기록이 대표적이라고 합니다.



두경승


두경승은 이의민의 라이벌로 고려사, 고려사절요에서도 꽤나 호전적인 평가를 받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두경승은 글을 읽을 줄 몰랐지만 활 솜씨를 비롯하여 무예가 상당했다고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두경승은 이의민과의 신경전에서 벽의 기둥을 주먹으로 쳐 진동시켰다고 합니다. 벽의 기둥을 쳐 진동이 날 정도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엄청난 무력을 소유했던 용장이 분명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양규


양규는 여요전쟁 당시 고려의 무장으로 여요전쟁 이전의 양규라는 고려의 무장에 대한 기록은 거희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양규는 여요전쟁 당시 600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6천 명의 요나라(거란)족이 지키는 성을 탈환하는 등 수 많은 활약을 했는데요. 특히 고려사절요와 고려사에서는 여요전쟁 당시 양규는 1달 사이 수 만명의 적을 베였다고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1달 동안 단 한번의 원병을 지원받지 않고 고려인 포로 3만 명의 구해낸 기록을 보면 정말 대단한 용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성계


이성계는 여말선초(고려 말, 조선 초)의 용장으로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에는 이성계의 무력은 넘사벽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성계는 한민족 최강의 보우마스터로써 활 솜씨가 대단했다고 합니다. 물론 조선왕조실록에는 창업군주다보니 허구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명나라인 명실록에 의하면 당시 명나라를 건국한 홍무제 주원장 역시 이성계의 존재 때문에 고려를 침공하지 못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신립


신립은 임진왜란으로 인해 비운의 용장으로 평가받는 인물이지만 임진왜란 직전에는 당대 조선 최강의 무장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신립은 북방에서 오랑캐들을 상대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에 의하면 신립은 활 솜씨를 비롯한 무술이 뛰어나 여진족들이 두려워했다고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유금필


유금필은 고려 개국공신으로 태조 왕건이 가장 신임하고 의지했던 용장입니다. 또한 유금필은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기 전 수세에 밀린 고려군의 선봉에 서서 '고창전투'를 승리로 이끈 인물이기도 합니다. 특히 후삼국 시대 당시 최강의 무력을 가지고 있었던 견훤 역시도 유금필의 존재 때문에 왕건과 화친을 맺을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당시 유금필의 존재만으로도 북방의 오랑캐들을 비롯한 적들이 존재만으로도 두려워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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