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트루먼 대통령'이 한국에 저지른 가장 큰 실수
2차세계대전 후반기 미국의 승리를 이끌고 한국전쟁 당시 한국을 지원했던 '해리 트루먼'대통령은 한국인의 입장에서 '은인'으로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한국전쟁 당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한국에 저지른 실수가 한가지 있다고 하는데요. 한국전쟁 당시 '트루먼 대통령'이 한국에 저지른 가장 큰 실수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해리 트루먼'은 미국의 2차세계대전 승리를 이끌어 낸 '루스벨트' 대통령의 후임으로 일본이 미국에 항복을 선언하자 대국민 연설을 통해 '승리(Victory)'를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한국을 무조건 구원해야한다며 미군을 파병했고 국제연합에 파병결의안을 제출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인천상륙작전 이후 중공군의 개입으로 국군과 유엔군이 밀리자 중국의 핵 투하를 계획했던 '맥아더' 사령관을 해임해버립니다.
또한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은 장제스에게 요청하여 50만 명의 국민당군의 중국 본토 상륙을 요청하게 되는데요.
당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중국의 핵 투하는 소련의 참전과 중국의 저항으로 인해 3차세계대전으로 번질것을 우려해 '더글라스 맥아더'를 해임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유엔군사령관이었던 '더글라스 맥아더'의 해임으로 인해 중국 대륙의 핵 투하, 국민당군 상륙의 계획은 취소가 되었습니다.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의 중국 동북부의 핵 투하와 50만 명의 국민당군이 상륙했다면 중국의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르는데요.
실제로 대만으로 후퇴한 국민당군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한국을 지원 할 준비를 마쳤던 상태였고 '더글라스 맥아더'의 요청에 의해 상륙작전 역시 준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즉, 한국전쟁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해리 트루먼'이 중국 동북부에 핵 투하를 승인하고 국민당군의 상륙을 수락했다면 21세기 동아시아는 평화의 지역이 되었을 것이라는 것인데요.
특히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가장 큰 실수였던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의 해임이 없었다면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는 장제스 초상화가 걸려있을지도 모르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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