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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까지 국군을 밀어냈던 북한군 지휘관의 최후

똥베이런 2018.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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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불법남침으로 시작 된 한국전쟁은 한민족의 5천년 역사 중에서도 가장 비극적인 역사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까지 국군을 밀어냈던 북한군 지휘관의 최후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초기 국군을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시킨 장본인은 '김광협'이라는 북한의 정치인이자 군인이라고 합니다. '김광협'이라는 인물은 함경북도 회령 출신으로써 일제강점기 시절 만주에서 활동하던 인물이라고도 하는데요.



'김광협'은 일제강점기 시절 김일성이 이끌던 빨치산인 '동북항일연군' 소속의 지휘관으로 '동북항일연군'의 정치위원으로 활동했다고 합니다.



해방 이후 '김광협'은 동북항일연군 소속으로 한반도로 귀국하여 북한 인민군 3사단의 직위를 지냈다고 합니다. 또한 '김광협'은 전쟁 준비가 한참 진행중이던 시절 중국 공산당 중앙정부에 요청하여 조선인 중공군 1만 4천 여명을 귀국시키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그리고 북측에서 전쟁 준비가 완료되자 '김광협'은 북한군 제2군단장 자격으로 병력을 이끌고 서울, 춘천, 서울 등으로 진격하였습니다. 



불행 중 다행히 '김광협'이 이끌던 북한군 2군단은 당시 국군의 명장이라고 불리던 6사단 김종오 사단장에게 막혀 춘천에서 고전했다고 하는데요. 결국 춘천에서 진격이 막힌 것이 김일성의 귀에 들어가자 빡친 김일성은 '김광협'을 전격 해임해버렸다고 합니다. 해임 당한 '김광협'은 북한군 2군단장 자리에서 해임되었지만 북한군 2군단 참모장으로 참전하여 낙동강 전선까지 국군을 후퇴시켰다고 하는데요. 그리고 1951년 김책이 사망하자 '김광협'은 북한 인민군 총참모장에 올라 승승장구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이 휴전되고 승승장구를 달리던 '김광협'은 1964년 정치국 회의에서 부수상으로 선출되어 북한측 핵심인물로써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김광협'은 1970년 북한 내부를 장악한 김일성의 유일사상구축 체계를 반대하는 명분으로 김일성에게 숙청당했다고 하는데요.



1970년 이후 '김광협'이라는 인물의 행방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김광협'이 중국 공산당과 친분이 막연한 사이였다는 것을 감안해본다면 중국으로 망명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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