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버리고 후회했던 중국의 천재과학자
냉전시기 미국이 버리고 후회했던 중국의 천재과학자는 중국 둥펑 시리즈 미사일을 비롯하여 중국의 핵 개발을 총감독했던 '천쉐썬' 박사입니다. 냉전시기 미국이 버리고 후회했던 '천쉐썬' 박사의 이야기에 대해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천쉐썬 박사는 중국 청나라 저장성 항저우 출신으로 미국 MIT공대, 칵텍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천재였습니다. 또한 '천쉐썬'박사는 미국의 미사일 개발 연구에도 참여하여 2차세계대전 승리에 기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1945년 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중국에는 국공내전이 발발했고 1949년에 중국이 공산화 되면서 '천쉐썬'박사는 이유도 모른체 미국 FBI에 체포, 가택연금이 되었는데요.
당시 '천쉐썬' 박사는 중국에 기밀 연구자료를 누출했다는 간첩혐의를 받았고 혐의가 기각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불법체류자로 낙인 찍혔습니다. 그러나 '천쉐썬' 박사는 중국인이지만 공산주의자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충분한 증거는 당시 '천쉐썬' 장인어른이 중국 국민당에서 장제스의 군사고문으로 일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이러한 가족들의 신분을 이용하여 자신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천쉐썬' 박사는 공산주의자로 오인받았고 미국의 안보와 직결되는 것을 너무나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 정부에 의해 5년 동안 도청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한국전쟁 휴전 이후 마오쩌둥은 중화민국이 장학생으로 뽑아 미국으로 유학보냈던 과학자들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국은 한국에서 포로로 잡았던 미군 포로들을 협상카드로 사용하여 중국인 과학자들과 맞교환하기로 결정했는데요.
그 중에는 '천쉐썬' 박사도 포함되어 있었고 미 해군에서는 로켓과 미사일 개발 능력이 검증되었던 '천쉐썬' 박사를 보내는 것을 반대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천쉐썬' 박사는 자신을 홀대했던 미국을 버리고 중국으로 귀국을 결정하게 되었는데요. '천쉐썬' 박사는 중국으로 귀국 이후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의 환대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미국과 해외에서 유학하던 중국인 과학자 100명을 데리고 중국의 미사일/핵 개발에 착수했으며 1959년에는 둥펑-미사일 시리즈를 개발했습니다. 또한 '천쉐썬' 박사 연구팀은 1962년부터 핵 개발을 추진하여 1964년에 핵 실험에 성공했으며 1967년에는 소수폭탄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미국은 '천쉐썬' 박사가 중국에서 태어난 중국인이었지만 공산당원이 아니었던 미국의 일류 공학자를 허무하게 내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 당시 미국이 '천쉐썬' 박사의 능력과 실력을 인정하고 그를 존중했다면 미국을 위협하는 중국의 둥펑 미사일과 핵 무기는 개발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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