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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139

일본의 재 침략! 정유재란 정유재란은 1597년 8월에 도요토미 정권 하 일본군이 명나라와의 정전회담이 결렬됨에 따라 다시 조선을 침공하여 1598년 연말까지 지속 되었던 전쟁이다 일본에서는 고요제이 천황의 연호를 따서 게이초의 역이라고 하며 정유재란의 뜻은 정유년에 다시 일어난 전쟁이라고 하여 정유재란이라고 한다 정유재란의 일본군의 성격은 임진왜란과 반대양상을 띄었다 쉽게 풀이하자면 일본군은 대부분의 성을 수성하는 방어측에서 전투를 주로 하게 되었고 조선과 명나라는 대부분 공격측에서 전투를 진행하였다 정유재란 일자 : 1597년 8월 27일 ~ 1598년 12월 16일 장소 : 조선 한반도 하삼도(전라도,충청도,경상도) 일대 결과 : 태합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으로 일본군이 전부 철수함으로써 조명 연합군의 승리 정전협상 불발과.. 밀리터리 2016. 10. 5.
어설픈 일본의 쿠데타! 삼무사건 1961년 12월 12일에 적발된 일본육군사관학교, 일본해군병학교 출신의 전직 장교들이 기도한 쿠데타 이며 일본 육사 모임인 국사회라는 곳에서 내세운 3무(무세금, 무실업, 무전쟁)라는 것을 중점으로 기도했다고 한다 추가적으로 국사회라는 일본 육사 모임은 군국주의적인 일본의 부활을 기도하기도 했다 핵심 인원 7명은 대부분이 일본 큐슈 북부 출신들이었으며 이들은 일본 내부 우익단체 등과 결합하고 자위대에서 사격훈련을 받은 인원 등을 참가 시킬 예정이었다 희한한건 민간단체에서도 참여하려고 했던 것인데 일본 내부에서는 한국의 5.16 군사정변의 영향을 받아서 생겨난 사건이라는 인식이 많다 대체적으로 일본 정치인들은 2차대전 때 군부에 끌려간 기억 때문에 문민정부를 상당히 중요시했고 문민정부 이후 문민정부 출신.. 밀리터리 2016. 10. 4.
한국전쟁 이후 동북아시아에 끼친 영향들 1950년 6월 25일에 북한이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아 불법 남침을 감행하여 전쟁이 시작되었으며 1953년 7월 27일 부로 휴전이 된 전쟁이다 정확하게 말해서 정전협정에 의해 정전이 된 것이다보니 언제 어디서 어떻게 전쟁이 다시 시작될지 모른다고 볼 수 있다 일부에서는 한국 정부가 정전협정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종전이라고 보는 시각도 일부 존재한다고 한다 전쟁일자 : 1950년 6월 25일 ~ 1953년 7월 27일 휴전 : 1953년 7월 27일 ~ 현재까지 장소 : 한반도와 부속영토 전쟁발발이유 : 북한 공산군의 불법 남침 결과 : 정전협정으로 인한 무승부 / 사실상으로 현재까지도 진행 중 경제적 피해 북한측 : 공업기반의 절반파괴, 30억달러 또는 국부의 1/4 남한측 : 전력의 74%, .. 밀리터리 2016. 10. 4.
일본의 재 침략! 정유재란과 강화회담 임진왜란 당시에 일본군은 이치전투에서 권율장군이 지휘하는 조선군에게 패배하고 진주목사 김시민이 진주성을 방어하여 진주성 함락을 실패하자 조선의 전라도 방어선을 돌파하는데 실패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일본군 내부에서도 더 이상 진격하기 힘드니 물러서자는 분위기 였다고 하며 진주성이 함락되었던 2차 진주성전투(1593년 6월)에는 일본군이 물러나는 가운데 히데요시의 김시민에 대한 분풀이와 일본군의 세력과시를 위해 벌어진 전투이지만 1차 진주성전투와는 달리 6~7천명 정도의 수비병력으로 방어전에 나섰으나 9만이 넘는 일본군을 상대로 9일동안이나 항전했으나 갑작스런 폭우로 성벽 일부가 무너지면서 성이 함락되었다 하지만 일본군 역시 성을 함락하는데 있어서 병력과 여러방면에서 피해가 심각했다고 한다 김덕령, 곽재우, .. 밀리터리 2016. 10. 2.
일본에서 보는 조선군 장수에 대한 인식 한국에서도 임진왜란 당시에 조선을 침략했던 일본군 장군들중에 그들의 대장인 풍신수길 이외 선봉장이자 외교를 담당했던 가등청정(가토 기요마사), 소서행장(고니시 유키나카) 딱 2명 뿐이며 당시 우리의 조상님들은 일본장수의 이름을 발음이 들리는데로 한자로 적었으며 그바람에 현재까지도 어르신들은 누군지 현재까지도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일본측도 마찬가지인것이 일본에 징비록에 들어가기 전까지 일본에서 아는 조선측 장수로는 해상보급로를 끊어버린 이순신 장군을 제외한 3명은 일본군에게 패전하거나 다시 말해 일본이 이긴 전투의 상대방 지휘관만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에서도 자신들의 기준으로 역사를 기록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에 알려져 있는 조선측 장군들 진주목사 김시민 (진주성 방어전에서의 승리).. 밀리터리 2016.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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