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역사학계에서 보는 고대 한반도 통일전쟁 시작설 4가지

똥베이런 2017.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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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통일전쟁은 고대 한반도 3개 국의 성장에 따라 3개 국사이에 벌어진 장기간의 전쟁을 말한다고 합니다. 삼국통일전쟁은 3개 국의 대립과 동시에 동아시아의 많은 나라와 종족이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관련된 국제전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역사학계에서는 고대 한반도 삼국통일전쟁 기간을 설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삼국통일전쟁 시기를 서술하려면 자연적인 시간의 흐름에서 어느시기를 정해 전쟁기로 특정화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발표 되었다고 합니다.



4세기 후반설


4세기 전반에 낙랑군과 대방군이 멸망한 후 국경을 접하게 된 고구려와 백제가 옛 중국 군현지역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전쟁을 벌인데서부터 통일전쟁의 시작을 설정 할 수 있다는 주장이라고 합니다. 당시 고구려와 백제 양국은 중앙집권적 영역국가체제의 구축을 지향하였으며 전쟁으로 획득한 영토와 주민을 중앙정부가 직접 장악하여 통치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고구려, 백제 양 국이 지향하고 있는 국가체제로의 발전을 위해서는 당연히 고구려와 백제 간에 더 많은 영토와 주민을 획득하기 위한 전쟁이 벌어졌는데요. 신라 역시도 뒤를 이어 영역국가체제로 발전하면서 영토전쟁 대열에 참가하였다고 합니다. 신라의 영역국가체제의 발전으로 3개 국 간의 영토 전쟁은 더욱 치열해졌으며 특히 수만 명이 동원되던 대규모 전쟁은 막대한 인력과 징발을 요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 고대 한반도 3개 국은 조직력과 동원력 확충을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활발해지면서 철제기술과 생산력 확충에 성공하였고 역사학계에서는 삼국통일전쟁은 4세기 중엽 이후부터 대략 300년 정도에 걸쳐 한국 고대사회가 중세사회로 전환하였다고 보는 시각입니다.



6세기 중엽설


역사학계에서는 3개 국의 전쟁이 6세기 중엽부터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뛴 통일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시각이 있다고 합니다. 즉, 신라가 관산성 전투 등 한강 유역과 가야 지역을 합병함으로써 3개 국의 역관계에서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였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적으로 역사학계에서 6세기 중엽설의 근거로 나제동맹의 붕괴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장 기간의 시간이 흘러 한반도 집권국가들이 격렬한 영토 전쟁과 중국 통일왕조인 수나라와 당나라가 출현 이후 국제적인 대전으로 추세가 변경 되었다는 것 주장이 있다고 합니다. 6세기 중엽설은 신라를 기준으로 형성 된 삼국통일전쟁 설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신라의 역사를 보면 신라의 국가적 기반을 확립한 것은 진흥왕 시대였고 신라를 기준으로 6세기 중엽설을 보았을 때 540년~576년에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는 있다고 합니다.



중국 통일제국의 등장에서 찾는 설


중국 역사 중 일부인 위진남북조시대를 거쳐 직접적으로 고구려를 포함한 한반도 고대국가들에게 군사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던 국가들은 중국 화북일대의 국가들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중국의 오호십육국 시대는 중국의 대혼란 시기로 상대적으로 군사적인 위협이 덜했다고 하는데요. 화북을 통일한 북위가 등장하자 그것만으로도 고구려는 상당수의 국제적인 정책을 변경했어야만 했다고 합니다. 특히 중국의 통일 왕조들은 한반도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웠기 때문에 역사학자들은 한반도 통일전쟁 시작을 중국사에서 찾아보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642년설


642년 이후의 모든 전쟁의 전개가 삼국통일로 귀결되었다는 사실에 토대를 두는 주장입니다. 642년 7월 백제의 의자왕이 친히 신라의 낙동강 서쪽 40개성을 공략하였고 8월에는 백제 장군 윤충이 대야성을 공략하였습니다. 643년에는 고구려와 백제가 신라의 서해안 주요 항구인 당항성을 공격하여 당과의 교통로를 차단했고 신라가 급히 당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여 나당동맹이 결성되었습니다. 결국 신라와 당나라의 군사동맹이 체결되자 백제 멸망과 고구려 멸망으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중국의 집권 제국인 당나라의 출현으로 인하여 동북아의 국제 형태가 변경 되었으며 일본의 동향과 연결되는 계기로 642년에 주목한 시각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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