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통일신라가 멸망한 이유 6가지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한국사 최초의 통일 국가인 천년을 유지했던 신라가 무슨 이유 때문에 멸망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잦은 반란
신라는 통일 이후 신문왕 시절에 왕권을 강화하기는 했지만 귀족들의 반란으로 왕권이 금방 약화되었다고 합니다. 통일 신라는 말기에 접어들면서 잦은 반란이 일어났다고 하는데요. 신라 말기에 반란을 일으킨 대표적인 인물이 후삼국시대를 대표하는 후백제의 왕이었던 견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골품제도
신라는 건국 이후 성골과 진골로 나뉘어 신분 제도를 운영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신라 통일의 기반을 만든 태종 무열왕이 바로 진골 출신의 국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신라의 신분 제도인 골품제로 인해 출세에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인재를 육성하지 못한 부분에 있어서 멸망 원인 중 하나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중앙집권 통치의 어려움
신라는 통일전쟁에서 통일을 한 이후에도 수도는 현재 경주 일대인 서라벌이었다고 합니다. 신라는 수도인 중앙 정부가 한 쪽으로 치우쳐 있었기 때문에 통치하기가 매우 힘들었다고 합니다. 수도가 한 쪽으로 치우쳐 있었기 때문에 궁예, 견훤 등의 세력이 통일신라 말기에 생기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보고 있다고 합니다.
흉흉한 민심
통일 신라의 멸망에 있어 백성들의 민심도 영향이 있었다고 내려져 오고 있습니다. 통일신라 말기에 견훤, 궁예 등이 거병하면서 당시 백성들의 지지를 상당히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통일신라 전성기 당시 페르시아인 등이 신라에 정착하여 살았다는 기록이 있지만 통일 신라 말기에는 악재가 많이 겹치면서 민심이 흉흉해졌다고 합니다.
지배세력의 부패
신라의 귀족들은 화백회의라는 것을 통해 국가 운영에 대한 정책을 결정하곤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신라의 호족들은 세력 다툼을 하는 등 내부적으로 부패를 많이 했다고 하는데요. 역사학자들은 통일 신라 말기 지배세력의 부패가 백성들의 지지를 받는 후고구려, 후백제 같은 부흥운동이 일어난 원인으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흉년으로 인한 왕권 약화
통일 신라 말기에는 가뭄 등의 흉년으로 백성들의 삶이 매우 힘들었다고 합니다. 흉년으로 인해 왕권 자체가 기능을 못할 정도로 약화되었다고 하는데요. 통일 신라 말기에 흉년을 극복하기 위해 중앙정부 차원에서 기우제 같은 제사를 지내기도 했지만 헛수고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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