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독립운동가11 외증조부가 독립운동가 였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며 고대생이 올린 글 지난 5일, 고려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는 익명으로 한 고대생이 올린 글이 올라왔다고 합니다. 외증조부가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고대생이 올린 글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익명의 고려대학교 재학생은 '지난 봄에 외가에 관련된 숨겨진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며 사연을 소개했다고 합니다. 익명의 고대생은 사연을 소개하면서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아버지인 외증조부가 독립운동을 하셨었다'고 했는데요. 익명의 대학생에 의하면 외증조부는 일제강점기 시절 인쇄소를 운영하고 계셨다고 합니다. 익명의 대학생의 외증조부는 인쇄소를 운영하면서 번 돈으로 독립운동가들에게 자금을 후원했다고 밝혔는데요. 그런데 독립운동을 하던 외증조부는 다른 독립투사들과 마찬가지로 독립운동이 발각되어 서대문 형무소로 끌려.. 밀리터리 2018. 10. 12. 더보기 ›› 민족의 독립을 위해 일왕 암살 계획을 실질적으로 계획한 인물 대한민의 독립을 위해 일왕(일본 왕)의 암살을 실질적으로 계획했던 독립운동가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민족의 독립을 위해 일왕 암살 계획을 실질적으로 계획했던 인물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소속의 독립운동가로 일왕의 실질적인 암살 계획을 계획한 인물은 독립운동가 '김철' 선생이라고 합니다. '김철' 선생은 일제강점기 시절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군무위원'으로 임시정부 창립 멤버이기도 한데요. '군무위원'은 현재 '국방부 장관'에 해당하는 직책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소속 무장단체들의 작전 및 활동 경로는 '김철' 선생이 이끄는 임시정부 군무부에 의해 움직였다고 합니다. 특히 '김철'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소속의 '군무위원'으로 일왕을 살해하려고 시도했던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훙커.. 밀리터리 2018. 3. 4. 더보기 ›› 민족의 독립을 위해 싸운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받는 대우 독립운동가라는 뜻은 일본에게 조선이 강제 합병 당하면서 조국을 되찾기 위해 싸운 사람들을 독립운동가라고 통칭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되찾기 위해 일제와 싸운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받는 대우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한반도는 1945년 8월 15일 2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일왕 '히로히토'의 무조건 항복이라는 방송이 울러퍼지면서 해방했습니다. 그리고 독립운동가들과 더불어 조선의 백성들은 일제에 협력하여 민족을 팔아먹은 친일파들을 처단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미군이 남한에 들어와 3년간 통치를 시작했고 미군정은 치안 및 국가안정의 목적으로 기존 친일파들을 대거 등용하여 그들에게 권력을 다시 쥐어주었는데요. 그들이 집권 한 채 이승만 박사를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하여 건국위원회는 대한민.. 밀리터리 2018. 1. 22. 더보기 ›› 도박쟁이로 불렸지만 진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인물 일제강점기는 일본에 의해 한반도(조선)이 강제합병 된 시기를 말하며 일제강점기는 한민족 역사 상 가장 암울했던 시기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한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들은 만주, 상해 등 중국 등지에서 활동하며 한반도의 독립을 위해 싸웠는데요. 도박쟁이로 불렸지만 진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인물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도박쟁이로 불렸지만 진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인물은 안동 지주 집안 출신인 독립운동가 '김용환 선생'이라고 합니다. 또한 '김용환 선생'은 퇴계 이황의 대제자였던 '학봉 김성일'의 13대 손으로 독립운동가로써 의병 활동을 했던 '서산 김흥락'의 손자였다고 합니다. 즉, '김용환 선생'의 집안은 대대손손 관직을 지내며 수 많은 제자들을 육성했던 집안이.. 밀리터리 2017. 12. 6. 더보기 ››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 알린 파란눈의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만세시위운동이 일어난 당시 제암리 인근의 개신교와 천도교 그리고 유학의 지도자들이 계획하여 3월 30일 제암리 인근 주민 천여 명과 제암리 발안 장터에서 만세 시위운동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제암리에서 만세시위운동이 전개되자 일본 헌병대는 시위 진압 목적으로 출동하였고 일본 헌병대는 제암리 마을을 습격하고 불태우고 주민들을 검거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본 헌병대의 강제진압사태가 발생하자 인근 화수리와 수촌리 등의 천도교, 기독교 지도자들은 1919년 4월 3일 2차로 만세시위를 진행하고 이 과정에서 일본인 순사 한 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일본 순사 한 명이 사망하자 1919년 4월 5일 일본 헌병대는 수촌리에 급습하여 만세시위 주동자들을 색출한다면서 마을 가옥 42.. 밀리터리 2017. 6. 21. 더보기 ›› 반응형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