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김구10 우리가 백범 김구 선생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 4가지 백범 김구 선생은 독립군의 아버지이자 민족의 아버지로 평가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 패망 이후 남한으로 귀국한 김구 선생은 타살로 생을 마감하셨는데요. 김구 선생 사망 이후 장례식은 국민장으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3.1 운동의 전통 계승자 백범 김구 선생은 일제강점기 시절인 1919년 3.1 운동 이후 상해로 망명하여 독립군으로써 대한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였는데요. 현재 대한민국의 헌법에는 대한민국은 상해 임시정부를 계승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은 상해 임시정부에서 지도자로 활동했습니다. 상해 임시정부는 대체적으로 무장 독립단체들과 많은 협력을 하였는데요. 특히 독립군은 미군과의 연합작전인 '독수리 작전'을 실행해 일제로부터 해방하려고 .. 밀리터리 2017. 2. 1. 더보기 ›› 민족이 기억하는 위대한 10명의 남자들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 히로히토의 항복선언으로 인하여 한반도는 일제로부터 해방하게 되었으며 조선을 위기에 빠트린 임진왜란 또한 일본의 침입으로 인하여 생긴 전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민족의 역사속에서는 꼭 기억해야하는 인물들이 있는데 한국인이 꼭 기억하는 10명에 대해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1948년 대한민국 공식 정부 수립 선포식 민족이 기억하는 위대한 10명의 남자들 전라좌수사, 삼도수군통제사 충무공 이순신 (1545년 3월 8일 ~ 1598년 11월 19일) "왜란으로부터 조국을 수호한 불패의 성웅" 조선 중기의 무관으로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지휘관으로 한민족으로부터는 전쟁의신, 성웅으로 통하고 있으며 한국인이 존경하는 위인 설문조사에서 항상 세종대왕과 더불어서 1,2위를 차지.. 밀리터리 2016. 10. 16. 더보기 ›› 3.1 만세운동이 끼친 영향들 1919년부터 1920년까지 일제강점기의 한반도와 전 세계에 걸쳐 있는 한인 밀집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으로 삼일 만세운동, 기미독립운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단 기본적으로 일본 제국의 강제적인 식민통치에 대항한 조선민족의 독립과 자주를 바라는 뜻으로 한민족의 민주주의 시작을 알린 신호탄이라고 볼 수 있다 만세 운동 시작일 : 1919년 3월 1일 시작 장소 :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에 종로 탑골공원 3.1운동 대표조직 : 민족대표 33인, 신한청년당,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제사회에 일제의 한반도 강제 식민지배화를 알리게 됨 민족대표 33인의 독립 선언문으로 3.1운동이 전개되자 대표적인 한인 1세대인 도산 안창호가 이끌고 있는 대한인 국민회는 자신들이 거주하고 있는 미국 LA (Los Ange.. 밀리터리 2016. 10. 14. 더보기 ›› 일제에 대항하는 독립군 3개 핵심조직들 한국의 독립군은 하나의 단체라고 단정짓는 것보다 일제에 저항하거나 일제와 무력으로 대항하는 준군사조직의 통칭이며 독립군 핵심조직들은 1910년 이후로 일제의 영향이 약한 만주로 근거지를 옮겨갔으며 1945년 한반도가 일제로부터 완벽하게 해방될 때까지 지속되었고 해외에서 조직하여 만주의 독립군들에게 군자금을 보내주는 한인1세대 이주민들의 독립군 단체들도 있었으나 국내와 만주 일대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조직들에 대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상해 임시정부 (한국 임시 망명정부) 임시정부 선포일 : 1919년 4월 13일 장소 : 중화민국 상하이 시 1차세계대전 이후 파리 강화 회의가 열리자 상해에서 신한청년당이 결성되었고 신한청년당은 파리 강화 회의에 대표로 김규식을 파견하였으며 세계 각 국의 회의에 참여하자 .. 밀리터리 2016. 10. 9. 더보기 ›› 일제에 대한 조국을 위한 희생 위대한 독립운동가 6인 안녕하세요.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본에 맞서 대항한 조선민족의 위대한 독립운동가 6인에 대해 뽑아 봤는데요. 개인적으로 생각나는 인물들에 대해서만 설명해드리는것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라며 조선민족의 독립을 위해 목숨바쳐서 싸운 독립군 모든분들이 위대하다는 것을 알려 드립니다. 김구(Gim Gu) 대한제국(현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인이며 정치인입니다. 동학농민운동과 교육계몽운동에 참여한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1919년에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현재 한국정부의 기반이 된 임시정부청사의 수립에 참여 하였으며 1940년에는 임시정부 주석에 선출된 상해 임시정부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은 해방이후 당시 우익 진영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했다는 점에서 흔히 이승만의 라이벌로 회자 되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TOP시리즈 2016. 9. 11. 더보기 ›› 반응형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