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가 수나라 별동대 30만을 몰살 시킬 수 있었던 이유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을 흔히 고수전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특히 살수대첩이 있었던 고수전쟁은 제2차 고수전쟁이라고 부르고 있는데요. 고구려는 어떻게 2차 고수전쟁 당시 30만 명의 수나라 별동대를 몰살 시킬 수 있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제2차 고수전쟁 당시 수양제는 30만의 별동대를 조직하고 방패, 갑옷, 창, 무기 등을 병사 개개인이 가지고 이동하게 했습니다. 또한 실제로 수나라 정사서인 수서에 의하면 유사시를 대비한 100일 치의 추가식량을 병사들이 직접 가지고 이동하게끔 했다고 하는데요.
결국 30만 명의 별동대는 평양성으로 이동하는 중간 중간 추가 식량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이동하는 도중 길거리에 식량을 버리는 병사들도 다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평양성에 도착한 30만의 수나라 별동대는 긴 장거리 이동과 더불어 무거운 짐을 운반했기 때문에 고구려군의 게릴라에 대처할 수 없었다고 하는데요.
중국과 한국의 역사전문가들은 제2차 고수전쟁 당시 수나라 별동대가 개개인이 운반한 무게는 대략 50kg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즉, 기본 군장이 20kg라고 가정한다면 추가로 100일치 식량 쌀 30kg를 추가로 가지고 운반해야하니 지칠대로 지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제2차 고수전쟁 당시 수나라 수군 지휘관 내호아는 공을 세우기 위한 욕심에 의해 수문제의 명령에 불복하여 평양성을 쳐들어가기로 결정했다는 것은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하지만 중국측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의 태자 고건무가 500명의 결사대로 내호아군을 패퇴시켰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사실 중국 자료에 의하면 고구려의 태자 고건무가 이끄는 500기의 결사대로 4만의 수나라 군대를 격파한 것은 과장일지도 모르는데요. 특히 제2차 고수전쟁 당시 한국측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중국측 자료를 기준으로 평가할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또한 제2차 고수전쟁 당시 고구려의 총사령관이었던 을지문덕 장군은 수나라에 거짓항복을 하고 수나라 진영의 실상을 확인하고 돌아오겠다고 이야기한 후 고구려로 복귀했습니다.
제2차 고수전쟁 당시 수나라 별동대 30만 명을 살수에서 몰살시킬 수 있었던 것은 보급체계와 더불어 군대의 사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제2차 고수전쟁 당시 수나라 30만 별동대는 피로와 물자부족은 해결할 수 없었고 결국 후퇴하면서 살수(현재의 청천강)일대에서 을지문덕의 수공에 의해 몰살 당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2차 고수전쟁 당시 수나라 별동대의 정확한 병력은 30만 5천 명정도라고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살수대첩으로 인해 수나라 별동대 30만 5천 명 중에서 수나라로 돌아간 병력은 2,700명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살수대첩은 한국 역사 상 야전에서 가장 큰 승리라고 역사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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