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와 스탈린이 무서워했던 미국의 장군이자 석기시대 매니아
We Should Bomb Vietnam Back into the stone age.
"베트남을 폭격해서 석기시대로 돌려놔야 합니다."
My soution to the Problem Would be to tell them frankly that they`ve got to draw in their horns and stop their aggression or We`re going to bomb them into the stone Age, And we would shove them back into the Stone Age with Air Power or Naval Power not with ground forces."
"그 문제에 대한 나의 해결책을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놈들에게 나팔따위 집어넣고 그만 공격적으로 나오든가 아예 폭격으로 석기시대로 되돌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린 그놈들을 우리의 지상군이 아닌 우리의 항공력과 해군력으로 석기시대로 몰아넣어 버리겠다. 이겁니다."
- Lemay. C. E, Kantor M, Mission With Lemay: My Story, 1965, P.565
But Who was it who`d go far beyond the enemy lines and attempt to destroy not only enemies in the field, not only supplies and fuel dumps and tank concentrations up near the front but would go deep into the enemy`s homeland, and thus try to eliminate his basic potential to wage war? Bombers, nothing but bombers.
"최전선에 있는 적을 섬멸하는 것, 전선에 걸쳐 있는 물자 및 유류 보급선을 차단하는 것, 모여있는 전차 대열을 파괴하는 것을 넘어서, 과연 어떤 병기가 적의 본토 깊숙히 침투하여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 자체를 꺽어버릴 수 있겠는가? 폭격기다. 오직 폭격기 뿐이다.
- Curtis Emerson LeMay 미 공군 참모총장 커티스 르메이 -
커티스 르메이 (Curtis Emerson LeMay)
1906년 11월 15일 ~ 1990년 10월 1일
커티스 르메이 공군참모총장은 미국 오하이오 출신으로 2차세계대전과 냉전시대의 미국 공군의 기틀을 세운 전설적인 미국의 명장이다. 커티스 르메이 장군은 가난한 이민자의 집안에서 태어나 아무런 연줄 없이 능력만으로 장군까지 올랐다고 알려져 있다. 많은 밀리터리 매니아들에게는 폭력덕후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커티스 르메이 장군은 2차세계대전 육군항공대의 중령으로 B-17로 구성되어 있었던 미 제8공군의 지휘관 중 한명이었다. 일제가 진주만 공습을 하자 미국의 여론이 심각해지면서 미국은 추축국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게 된다. 이후 커티스 르메이는 제305폭격항공대(305th Bombardment Group)에 배속되고 폭격기 조종사와 승무원들을 훈련시키고 장비를 마련하는 등의 고생을 하게 된다. 이로인해 과로로 안면신경마비가 일어나 한동안 오른쪽 얼굴이 굳어진 탓에 무식하고 괴팍한 이미지가 더욱 강해지게 된다.
특히 커티스 르메이 장군은 아군의 폭격기들을 폭격이 끝나기 전 회피 기동을 포기하고 대형에 맞춰 직선으로 비행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아군의 폭격기 승무원들은 커티스 르메이 장군의 명령에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커티스 르메이 장군은 폭격기 승무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이에 커티스 르메이는 폭격기들이 10초 안에 폭탄을 떨구고 단체로 회피 기동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88mm 대공포 예상 격추율을 자신이 계산해 본 결과 372발 당 1대로 충분히 견뎌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커티스 르메이는 자신의 말을 증명하기 위해 앞장서서 선두 기체에 탑승하여 출격했다. 결국 탄착률이 종전의 2배로 늘어나고 목표 상공에서 7분간 직선 비행을 한 결과 폭격기 한 대도 잃지 않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이 폭격전술을 미 제8공군 전체에 도입되게 된다.
그리고 커티스 르메이는 고속 승진을 이어가게 된다. 1943년 말에는 준장으로 진급하여 장군이 되었고 1944년 3월에는 37세의 나이로 당시 최연소 소장이 되었다.
당시 미국의 국방장관을 지낸 로버트 맥나마라가 르메이 장군의 부하로 있었다고 한다. 로버트 맥나마라는 당시 르메이 장군이 휘하 폭격기들이 높은 임무포기율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맥나마라는 특유의 분석력으로 임무포기의 원인 대부분이 공포에 있음을 알아챘다고 한다. 이러한 보고를 들은 커티스 르메이는 "돌아가는 놈들은 군사재판에 회부하겠다! 라고 외치며 앞장서서 선두 기체에 탑승하여 출격했다고 진술했다.
커티스 르메이가 일제의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는 것이 일본 본토 공습 작전이다. 미국은 진주만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 본토 공습 작전을 계획했다. 커티스 르메이는 일본의 육군 항공대가 충칭 등 중국 도시들에게 소이탄으로 효과적인 공격을 하는 것을 보고 이것을 반대로 적용해 일본 도시에 써먹을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생각을 구상하던 1945년 2월에는 대일 폭격을 책임지는 미군 제21폭격기 사령부의 사령관으로 취임해 일본 본토 공습에 대한 모든 작전을 총괄하게 된다.
군사적인 행동을 취하겠다는 결정이 내려지면 최대한 빨리 필요한 것 이상의 군사력을 사용해야 합니다. 군사력을 사용하는 목적은 오로지 전쟁을 한시라도 빨리 끝내겠다는 것이어야 합니다. 오랫동안 전쟁을 끌게 되면 문명화된 세계와 인류사회에 점진적인 피해를 줄 뿐 아니라 자원을 낭비하는 모양새가 되기 떄문입니다. 비효율의 극치이죠.
"...The main thing is to get it over with as quickly as possible..."
... 전쟁이 싫다면 해결책은 이기는 것 뿐이라 생각합니다. 이길 것 같지 않다면 치를 생각을 버리는게 낫습니다. 패배하고 죽는 쪽을 선호하는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To me winning is the only solution if you don`t like the war. And if you don`t think you`re going to win, you might as well give up without going, unless you prefer to be dead and defeated."
... 핵전쟁 상황에서 이긴다는 상황의 정의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일단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기기 위해서는 치르는 대가는 제가 감수 할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 클 것입니다.
- 커티스 르메이, Quest for Peace(1985) 인터뷰에서 -
1945년 3월 10일에 진행된 미군의 도쿄 대공습에서는 일본 도쿄의 26만 7천 채의 건물이 파괴되었고 도쿄 거주자 8만 9천명이 사망했으며 6만 6천 명이 부상당하는 등 일본에 엄청난 손해를 입혔다.
또한 대량의 기뢰를 폭격기로 투하하여 일본의 주요 항구를 봉쇄하였고 일본 전역에 기아를 몰고 오기도 했다. 특히 그의 지휘 하에 종전 직전인 1945년 7월 시점으로 일본의 주요 도시의 60%가 잿더미로 변했으며 일본의 공업생산량은 폭격 전 대비 40% 이하로 떨어졌다. 그리고 일제는 무조건 항복을 하였고 2차세계대전은 종전을 하게 된다.
커티스 르메이는 2차세계대전 이후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에게도 공포를 심어주기도 하였다고 한다. 특히 커티스 르메이 장군은 한국전쟁 직전인 1949년에는 전략공군사령관에 취임했다. 이후 이오시프 스탈린이 베를린 봉쇄로 자본주의 진영에 빅엿을 먹이려고 하자. 커티스 르메이는 "전 세계의 C-54 조종사들에게 전한다. 지금 즉시 독일로 날아오도록!"을 시전하였고 베를린 공수 작전을 시행하여 소련에게 역관광을 시전했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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