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일본인들의 시각에서 평가한 임진왜란 3대 전투

똥베이런 2018.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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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와 태합기에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처절하게 싸운 전투들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일본서기에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처절하게 싸운 전투를 일본의 임진왜란 3대 전투라고 평가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일본인들이 평가한 임진왜란 3대 전투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치 전투


임진왜란 초기에 일어난 전투로 지휘관은 당시 광주목사 권율로 알려져 있는 전투입니다. 이치 전투에 참전한 왜군의 지휘관은 고바야카와 다카카게라고 하는데요. 임진왜란 초기 순식 간에 조선의 수도 한양을 점령한 왜군은 식량 문제와 점령하지 못한 호남지역으로 진군하기 위해 병력을 보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왜군은 호남으로 들어가는 전라도 진산군 인근 이치 지역에서 조선 관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전투 도중 호남의 대규모 의병 대군이 왜군의 후방을 공격한다는 소식을 첩보하고 후퇴한 전투라고 합니다. 이항복의 문집인 <백사집>에 의하면 이항복의 장인이었던 권율은 이치 전투를 제일 자랑스러운 전공이라고 할 정도로 자랑스러워했다고 합니다. 



평양성 전투


조선왕조실록과 일본서기의 기록을 종합해보면 평양성 전투는 총 4번에 걸쳐서 진행 된 전투라고 합니다. 특히 4차 평양성 전투는 명군과 조선군의 협공으로 평양성이 함락 되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왜군과 조선군의 입장에서 평양성은 지리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요충지였다는 평가가 대부분입니다. 일본서기 역시 4차에 걸친 평양성 전투 당시 왜군은 상당히 처절하고 치열하게 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벽제관 전투


일본서기에는 일본군이 제4차 평양성 전투에서 패배하여 평양, 개성을 빼앗기기는 했지만 벽제관에서 명군 10만을 적은 병력으로 격파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명나라 이여송은 벽제관에서 일본군을 추격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후 조선에 눌러 앉았다고 하는데요. 오히려 일본군은 평양성 전투의 패배를 만회하고자 행주산성의 조선군을 격퇴하고 후방을 정리하고자 했으나 오히려 행주산성에서 대패하고 한양으로 철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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