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고려 백성 3만 명을 구한 고려의 진정한 영웅

똥베이런 2017.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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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여요전쟁은 단판외교의 대가 서희가 활약했으며 3차 여요전쟁에서는 귀주대첩의 영웅 강감찬이 활약했습니다. 하지만 2차 여요전쟁에는 누가 활약했을까요? 요나라 황제 요성종이 직접 이끈 요나라 대군에 맞서 백성 3만명을 구한 2차 여요전쟁의 영웅을 소개해드릴까합니다.



제2차 여요전쟁에는 요나라 성종이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공격했습니다. 1010년 11월 17일부터 거란군은 일주일 동안 흥화진 공격하였으나 함락당하지 않자 요성종은 강조의 서신을 위조하여 항복 서신을 보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양규 장군은 우리는 왕명을 받았기 때문에 강조의 지시를 받을 수 없다고 했는데요.



이후 남하한 거란군은 통주성을 공격했지만 함락시키지 못하고 인근 곽주성을 함락시킨 후 6천명의 수비병만 남겼다고 합니다. 요성종은 곽주를 중간기지로 삼고 서경(평양)까지 공격하였으나 서경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서경(평양)이 함락 당하고 있던 1010년 2월에는 양규 장군의 7백명의 결사대가 통주까지 이동하여 1천명의 군사를 수습했다고 하는데요. 이후 양규 장군은 수습한 고려군과 결사대를 이끌고 곽주성을 습격하여 성을 탈환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1011년 1월에는 요성종이 개경을 함락시키면서 고려왕 현종은 남쪽으로 피난을 갔다고 하는데요. 거란군은 고려인 포로 수 만명을 납치하여 청천강까지 북상했고 이에 귀주에 주둔하고 있었던 귀주 별장 김숙흥과 중랑장 보량이 이들을 습격하여 거란군 1만 명을 사살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때 마침 양규 장군의 병력이 거란의 예비병력을 습격하였고 고려 백성 3천 명을 탈환했다고 합니다.



거란군이 철수를 시작한 시점부터 양규 장군과 김숙흥 장군은 고려인 포로들을 탈환하기 위해 거란군을 추격했다고 하는데요. 양규 장군은 김숙흥 장군과 서로 연락을 취하면서 계속해서 거란군을 습격하고 고려 포로들을 풀어주는 작전을 펼쳤다고 합니다.



대체적으로 역사학자들은 양규 장군과 김숙흥 장군이 거란의 포로로 잡힌 고려의 백성들을 최대한 많이 구출해 내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다하는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고려사는 제2차 여요전쟁에서 포로로 잡힌 고려 백성들을 3만 명 가까이 구출해 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요.



양규 장군과 김숙흥 장군은 요성종이 직접 지휘하는 친위대를 상대로 접전을 펼쳤다고 하는데요. 양규 장군은 요성종의 친위대와의 전투에서 전사하게 되는데요. 하지만 현대의 역사학자들은 2차 여요전쟁의 영웅 양규 장군이 힘을 다해 싸운 것은 포로로 잡힌 고려의 백성들이 도망갈 시간을 벌기 위해서 수적으로 밀렸지만 장렬하게 싸우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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