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몽골 제국의 쿠빌라이를 칸으로 만든 고려의 태자

똥베이런 2017.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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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제국은 전 세계 역사상 가장 거대한 영토를 가진 대 제국으로 몽골 제국에서 원나라로 국명을 변경하고 아시아 국가를 포함한 시베리아 대륙에 걸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그리고 몽골 제국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몽골에 대항한 국가는 바로 한반도에 위치한 고려라는 국가였다.



고려의 고종은 몽골 제국과 한참 전쟁 중이던 1235년에 태자로 아들 왕정을 책봉하고 1259년에 기나긴 몽골과의 전쟁을 끝내고 강화를 맺기 위해 태자를 몽골에 사신으로 보내게 된다.



원래 고려 태자사신단은 사천성 방면에서 원정 중이었던 몽케 칸을 만나러 가던 중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몽케 칸이 급사하는 바람에 칸의 자리가 공백이 생겼버렸다. 이에 고려의 태자 왕정은 중국 화북에 있던 쿠빌라이와 몽골의 수도 카라코쿰을 지키는 아리크부카 사이에서 칸위 계승에 대한 분쟁이 벌어졌다는 첩보를 입수하게 되는데 태자 일행은 둘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처했다.



고려의 태자 일행은 신의 한수로 중국 화북지방에 있는 쿠빌라이에게 가는 것으로 선택했고 쿠빌라이는 기뻐하며 태자 일행을 반겼다고 한다. 쿠빌라이는 "고려는 그 옛날 당태종이 굴복시키지 못한 나라였는데 그 나라의 태자가 왔으니 하늘의 뜻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역사학자들은 몽골에게 수십년 동안 굴복하지 않았던 고려의 태자 일행이 쿠빌라이를 찾아간 것은 쿠빌라이의 마케팅 수단과 더불어 칸위 계승에 명분으로 상당한 우위를 차지하지 않았나라고 평가하고 있다고 한다.



쿠빌라이는 고려의 태자일행과 강화에 대해 논의를 적극적으로 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쿠빌라이는 태자 왕정을 고려의 국왕으로 책봉했다고 고려사는 기록하고 있다.



세계 역사상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몽골 제국의 세조 쿠빌라이 칸을 만든 그 남자가 바로 고려의 24대 국왕 원종이다. 고려사는 원종이 쿠빌라이와의 인연으로 원나라 간섭기에서도 고려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고려의 원종이 재위한 기간 동안 친원정책에 대항하여 고려 무신세력의 삼별초의 난 등과 같은 사건이 많이 생겨났다고 하는데요. 원종의 친원정책으로 권문세족이라는 악의 축이 생겼다는 일부의 평가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무자비한 학살을 감행하는 몽골로부터 백성들을 구했고 쿠빌라이 칸이 아닌 다른 칸을 지지했다면 고려는 몽골에 흡수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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