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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모르는 고려의 명장 최영 장군의 이야기 5가지

똥베이런 2017.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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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영웅으로 추앙받았던 최영 장군이 사망 이후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조선 건국기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최영 장군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소개해드릴까합니다.



백전노장 최영


위화도 회군 당시 최영 장군은 개경에 남아있는 병력을 모아 위화도에서 회군한 고려군을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고 합니다. 특히 70세의 백전노장임에도 불구하고 좌군통사 조민수의 대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고 하는데요. 수적으로 몰리자 최영 장군은 이성계에게 붙잡혔다고 합니다.



최영 장군의 유언


최영 장군은 이성계로부터 고봉현이라는 곳에 유배를 가게 되었고 얼마 되지 않아 개경으로 후송되어 개경에서 최후를 맞게 되었다고 합니다. 최영 장군은 죽기전에 유언을 남겼다고 하는데요 최영 장군은 "만약 내가 평생동안 한 번이라도 사사로운 욕심을 품었다면 내 무덤에 풀이 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풀이 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야사에서는 실제로 최영 장군의 묘에 풀이 나지 않자 최영 장군의 묘를 적분(풀이 나지 않는 묘) 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최영 장군 묘와 조선왕족무덤


최영 장군의 묘는 재미있게도 조선왕족들의 묘가 둘러싸고 있다고 하는데요. 최영 장군의 묘 뒤에는 최영 장군의 아버지 최원직의 묘가 있다고 합니다. 특히 재미있는 건 최영 부자의 묘가 있는 산에는 태종의 4남인 성녕대군의 묘와 소현세자의 아들 이석견의 묘가 위치하고 있다고 합니다.



최영 장군 사망 이후 백성들의 항의


최영 장군이 세상을 떠난 날 고려의 백성들을 크게 슬퍼했다고 합니다. 세상을 떠난 당일날에는 개경의 상인들은 모두 가게 문을 닫아 이성계 일파에 대한 무언의 항의를 표시했다고 합니다. 이후 태조 이성계는 성계탕 등의 모욕적인 별명을 가지고 구한말까지 조선 역사상 가장 욕을 많이 먹은 왕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최영 장군의 집권 기간


최영 장군은 고려 우왕의 장인으로 집권하고 난 뒤 바로 요동정벌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우왕의 장인으로써 고려에 최고권력자로 집권한 지 반 개월만에 위화도 회군이라는 사건이 벌어졌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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