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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마오쩌둥이 김일성의 2차 한국전쟁을 사전에 차단한 이유

똥베이런 2017.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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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최근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기밀문서를 공개하면서 한국전쟁 이후에 대한 기밀문서를 공개했다. 이 기밀문서에는 1975년 김일성이 2차 한국전쟁을 통해 한반도를 무력통일화 시키려고 했던 내용을 문서로 기록해 놓은 문서이다. 이 글은 중국 화둥사범대 교수 선즈화가 집필한 '최후의 천조 마오쩌둥, 김일성 시대의 중국과 북한'의 서술된 책을 기본으로 한다.



중국에서 기록한 기밀문서에는 한반도 분단 이후 북한이 가장 잘 살았을 당시에 2차 한국전쟁을 일으키려고 했다고 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모택동은 김일성의 무력통일에 대한 의지를 사전에 차단하면서 화제를 돌렸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8월 종파사건과 상당히 연관이 되어 있다고 한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은 연안파, 소련파, 김일성파, 남로당파로 나뉘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일성파를 제외한 세력들이 김일성을 축출하려고 하자 김일성파가 8월 종파사건을 일으키면서 중국 연안파 세력들을 숙청하기 시작했다는 것인데 이 것이 중국과 북한이 '혈맹' 이지만 불신임하게 되는 사건이라고 한다.



김일성은 결국 8월 종파사건으로 자신을 우상화 시키며 독재 정권의 체제를 성립하게 되었고 이러한 북한 김일성의 행동은 마오쩌둥의 입장에서 곱게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특히 마오쩌둥은 중국 수뇌부의 거처인 중난하이에서 당시 중국 주재 소련대사와 마주 앉아 북한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특히 마오쩌둥은 김일성이 한국전쟁 휴전 이후 다시 전쟁을 하려고 하는 태도를 보이자 이 전쟁을 굳히 해야 할 이유가 없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마오쩌둥은 한국전쟁에 중공군을 참전시킨데 있어 후회를 했다는 기록도 존재한다고 한다.



김일성이 직접 계획한 2차 한국전쟁은 1975년에 마오쩌둥에게 다시 건의를 하게 되는데 당시 베트남 전쟁에서 베트남 공산군이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일성의 입장에서는 사회주의 진영이 베트남 전쟁의 승리로 분위기가 상승되어 있을 때 2차 한국전쟁을 일으킨다면 승산이 있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오쩌둥은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의 중국 방한과 더불어 베트남 전쟁에 대한 승리를 사회주의 진영의 승리라고 짤랐고 김일성에게 "이제 부터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라고 김일성에게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결국 김일성의 한반도 무력통일에 대한 의지는 '8월 종파사건'으로 마오쩌둥에게 불신임을 받으면서 마오쩌둥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덩샤오핑이 집권하던 시기에 중국과 북한의 교류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하며 이후 중국과 북한은 독자적인 사회주의 노선을 선택했고 중국은 개혁개방을 실시하여 현재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한국전쟁에 중공군 참전에 대해 후회를 하였고 김일성을 도와줬지만 결국 돌아온건 중국 연안파의 숙청이라는 것을 보았을 때 마오쩌둥은 2차 한국전쟁을 막아야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고 만약 스탈린에게 전쟁을 승인해달라는 김일성이 요청갔더라도 스탈린은 전쟁 승인을 해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군사학자들의 평가이다. 따라서 북한은 현재까지도 중국과 러시아의 도움 없이는 독자적으로 전쟁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에 핵 미사일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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