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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유엔연합군은 왜 인천으로 상륙을 결정했을까?

똥베이런 2017.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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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한국전쟁이 개전 된 이래 북한군은 국군을 낙동강 전선까지 밀어내는데 성공하였지만 북한군은 낙동강 전선에서 고착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인민군은 길어진 보급로와 계속되는 전투 그리고 연합군이 미칠듯이 쏟아부은 폭격으로 인해 정예부대의 전투력이 크게 고갈된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서 UN의 회원국들은 한반도 파병을 결정하게 되었고 이렇게 결성된 국제연합군의 사령관으로는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었습니다.



당시 유엔군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은 전황을 일거에 역전 시킬수 있는 적의 후방의 상륙작전을 원하였다고 합니다. 북한군의 모든 병력이 낙동강 전선에 집중되어 있었고 빈약한 육상 보급으로 전선을 유지하고 있는 점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고 하는데요. 이에 맥아더 장군은 보급선을 잘라버리면 일제히 인민군이 총 붕괴 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고 합니다. 당연히 맥아더 장군의 상륙작전이 성공하였고 인천을 기점으로 북한군의 보급로를 끊어버리자 낙동강 전선에 있던 한국군이 반격하여 북상하였으며 연합군에 합세하여 북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인천상륙 직전 UN연합군의 상륙지점으로 생각했던 지역은 전라북도 군산시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군산은 항구도시로 상륙의 조건 자체는 좋았지만 적의 보급선을 하나도 끊지 못하고 적의 병력을 하나도 포위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맥아더 장군은 자신의 생각을 브리핑하며 인천을 상륙지역으로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연합군 상륙작전을 수행 할 미 합참과 미 해군본부는 인천이라는 지역에 상륙작전을 하지 못한다는 반대의견을 굽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맥아더 장군 역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결국, 맥아더 장군은 인천이 적의 보급로를 완전히 차단 할 수 있고 수도 서울을 수복할 수 있는 점에 있어서 지속적으로 주장했다고 합니다. 결국, 인천 상륙에 대한 브리핑을 통해 미 합참과 미 해군본부를 설득하여 인천 상륙에 대한 승낙을 얻어낸 것인데요.



맥아더 장군은 미 합참과 미 해군본부에게 유엔군 인천상륙계획에 대한 승인을 받았습니다. 승인이 떨어지자 국제연합군은 9월 15일 00시 05분을 기점으로 상륙작전을 실시하게 되는데요. 1950년 9월 15일 미 해군의 월미도 상륙과 레드비치(인천항) 상륙을 통하여 인천 내부까지 진입 하였다고 합니다. 상륙 작전 이후에는 미 해군이 북한 인민군을 시가지 내부에 몰아넣어 모두 소탕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국군 해병 제1연대가 인천 상륙하는 것을 끝으로 인천상륙작전은 완벽히 성공시켰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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