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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고려의 용장 8인

똥베이런 2017.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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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국의 역사에서 고려는 중세시대를 풍미했던 한반도의 왕조국가였는데요. 고려는 특히 외세의 침략을 제일 많이 받았던 한반도의 왕조국가였습니다. 하지만 외세의 침략을 상대로 백성을 구하거나 적군을 적은 병력으로 격파한 용장들이 있었는데요. 그들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한민족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고려의 용장 8인



유금필


후삼국시대 당시 고려 태조 왕건의 무장으로 특히 고창전투에서 혼혈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들어 고려군의 사기를 올렸다는 무용담이 전해내려오고 있습니다. 무예 역시 당대 최고의 실력을 자랑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북방의 여진족을 복속시켰다고 하는데요. 그들에게 대추장이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하니 정치력 또한 일품이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김경손


몽골의 1차 고려 침입 당시에 귀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고려의 용장이라고 합니다. 몽골군은 최초 김경손 장군이 있던 정주까지 침입하였으나 김경손 장군이 지휘하는 결사대로부터 패배하였고 김경손 장군은 성 안으로 돌아왔으나 백성들이 다 도망갔다고 합니다. 이후 인근 귀주로 이동하여 고려군과 함께 전투를 지휘했는데요. 당시 김경손 장군은 12명의 고려군 병사들로만 몽골군 진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귀환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최영


여말선초 당시 공민왕 집권 시절부터 왜구를 상대로 승리하거나 반란을 진압하는데 있어서 공을 세운 용장이라고 합니다. 야사의 기록에 의하면 왜구들이 제일 무서워했던 고려의 장수는 머리가 허옇게 샌 최 만호 뿐이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양규


여요전쟁 당시 활약장 장군으로 요나라 성종이 직접 침입했을 때 소수의 정예 병력을 이끌고 각지에서 거란군을 격파하였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고려사의 기록에 의하면 여요전쟁 양규 장군이 구한 고려군 포로는 무려 3만 명에 이르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척준경 장군, 김경손 장군에게는 선배격인 인물입니다.



척준경


한민족 역사상 최강의 소드마스터로 평가받고 있는 척준경입니다. 척준경은 여요전쟁 당시 궁지에 몰린 고려군을 위기로부터 구해낸 용장이라고 하는데요. 실제로 여진족들은 척준경에게 호되게 당하게 되면서 고려 침공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자성


여몽전쟁 이전의 기록은 고려사에서 찾아볼 수 없으며 여몽전쟁에서의 활약보다 고려 내부의 반란을 진압하는 것에 능숙한 용장이라고 합니다. 특히 이자성은 반란진압전문가라는 평가가 대부분인데요. 이자성이 진압한 반란만 해도 이통의 봉기, 충주 관노 2차 반란, 용문창 습격사건, 동경의 난 4개의 사건이라고 합니다.



이성계


여말선초 당시 최악의 패악질을 저질렀던 왜구, 반란군, 홍건적, 원나라 군벌 등을 상대로 수 만명 씩 개박살을 내버린 인간 흉기입니다. 특히 고려사의 기록에 의하면 당대 동아시아에서 싸울 수 있었던 적들과 모두 전투를 벌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당시 이성계의 영향력을 실로 엄청났다고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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