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일본 인터넷에서 이순신 장군을 왜곡하는 수법들

똥베이런 2016.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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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일본의 연구자들 역시 이순신 장군의 능력과 임진왜란에 끼친 영향을 절대로 부정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 해군사 및 일본전국사와 관련된 역사학자들 중 최고 중 한명인 키타지마 만지 교수의 경우에는 KBS 다큐멘터리에까지 나와서 이순신 장군에 대한 뛰어난 평가를 내릴 정도였으나 일본 인터넷 상은 현실과 달리 이순신 장군에 대한 왜곡 범위가 상당한데 사서에서 일본 우익들의 입맛에 맞게 문장을 대목만을 짜집기하여 일본의 역사에 유리한 결론을 내기로 악명이 높다


아래는 일본 인터넷상에서 이순신 장군 관련 왜곡 사례 및 수법들이다



명량해전이나 노량해전 등 전과의 폄하


일본 우익들이 전투에선 졌지만 전략목표는 달성했다고 평가하는 명량해전은 일본의 서해 진공은 완전히 좌절되었으며 수군력의 약화로 이후 큰 공세를 하지 못하고 왜성에 의지한 수비전, 교착 상태에 들어간다



노량해전에서 마치 이순신 장군이 전쟁범죄라도 저지른 듯이 퇴각하는 사람을 잔인하게 추격하다가 역습을 맞았다는 식으로 써놨으며 조선군이 괴멸당하고 일본군이 전력을 온존하여 승전한 것처럼 써놨다 참고로 퇴각과 항복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고 현대전에서도 퇴각하는 군대를 공격하는 것은 전쟁범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도요토미, 도쿠가와 양대 세력이 큐슈를 정벌하려고 했으나 두 가문이 시마즈를 분쇄하지 못한 채 강화를 맺었을 정도로 막강한 다이묘였던 시마즈 가문은 임진왜란 참전 이후 일본의 천하를 판가름하는 결전인 세키가하라 전투에 몇 천도 안 되는 병사 밖에 동원하지 못했다 정치적인 이유가 주로 거론되지만 노량해전에서의 피해 역시 또한 주된 이유로 제시되는데 실제로 시마즈 가문은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여할 의사 자체가 적었기에 시마즈는 서군에 1,500명을 보낸것이다



실제로 일본 인터넷 상에서는 노량해전이 임진왜란 종전 전에 벌어진 엄연한 전투행위라는 점을 무시하고 있는데 노량해전은 조명연합군의 마지막 대공세였던 사로병진작전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벌어졌고 더군다나 사천의 왜성을 바다에서 포위하다가 응원군이 오는 것을 차단하면서 벌어졌으므로 시마즈 가문이 노량해전에서의 피해로 세력이 약화되어 세키가하라 전투에 적은 수의 병력을 보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선과 일본의 기록들을 입맛에 맞게 해석하는 태도


대체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일본측의 사료는 군충장과 진지표, 전황보고서 등이 신뢰가 가장 높은 1차 기록물로 보유하고 있다 수치적인 면에 있어서는 총 참전 인원 십 수명 수준의 전투에세도 보고를 위한 군충장을 작성했던 것이 일본 전국시대의 특성이었고 부대배치와 병력 현황, 일본군의 병력 흐름 등을 자세하게 기록하여 효과적으로 파악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일본 인터넷 상에서는 일본 역사의 정사를 무시하고 일본군 장수들의 가문 기록은 조선의 족보 기록과 비슷하게, 가문의 공은 부풀리고, 피해를 축소하여 명예를 치장하는 면이 있다



일본이 왜곡된 역사교과서를 배부 할 당시에 학생들에게 조국에 대한 자부심과 전통성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새로운 일본의 역사교과서에서는 일부로 이순신 장군을 제외시켰고 기존의 대부분의 일본 역사교과서에는 이순신 장군의 초상까지 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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