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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북한군도 질색했던 '불암산 유격대' 13인

똥베이런 2018.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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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비극적인 역사로 평가받는 한국전쟁 당시 육사생도들은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전쟁에 투입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도 질색했던 육사생도 13명으로 구성된 '불암산 유격대'의 이야기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육군사관학교는 10기와 11기들을 임관도 시키지 않은 채 소총수로 직책을 부여한 후 전쟁에 참전시켰다고 합니다. 당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던 육사생도들은 포천 방어전에서 대부분이 전사했고 육사 10기 10명, 11기 3명, 7사단 장병 7명만이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포천 방어전에서 살아남은 20명은 '호랑이'라는 이름으로 유격대를 만들고 서울 남양주에 있는 불암산이라는 곳으로 들어가게 되는데요. 20명으로 구성된 유격대는 불암산의 동굴들을 이용해 북한군의 후방을 치는 유격 활동을 벌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이들은 불암사 주지스님의 지원도 받아가면서 북한군의 후방을 치는 활동을 지속해 나갔다고 하는데요.



1950년 7월 11일, 20명의 유격대원들은 100명 정도의 북한군 병력이 지키는 퇴계원 보급소를 공격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계획대로 유격대는 퇴계원 보급소를 완전히 태워버리고 철수했으나 기습을 하던 도중 유격대원 3명이 전사하고 말았다고 하는데요.



또한 '퇴계원 보급소' 기습 공격 이후 민간인으로 변장한 6명의 유격대원이 창동초등학교에 주둔하던 북한군 수송대를 공격해 성과를 올렸지만 여기서 2명이 전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듬해 8월 15일에는 육군사관학교가 북한군의 임시 훈련장으로 사용된다는 것을 알고 유격대원들은 기습을 했고 강제로 징집된 청년들을 구해내는데 성공했지만 6명이 전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20명의 유격대원 중 일부가 전사하자 '불암산 유격대'는 불암산에서 은거하기 시작했고 은거를 하던 중 국제연합군이 서울을 향해 진격 중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연합군이 상륙하면 연합군과 합류해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지만 북한군이 퇴각하면서 마을 주민들을 북으로 데려간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는데요.



이들은 내곡리에 사는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 '자살 작전'을 계획하기 시작했고 작전 당일 북한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내곡리 주민 100명을 구출해냈다고 합니다. 이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내곡리 주민들에 의해 구출된 강원기 생도를 제외하고는 유격대원 모두가 전사했다고 하는데요.



경기도 남양주시와 불암사는 매 년 '불암산 유격대'를 기리기 위해 매년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제연합군이 상륙하기 전 북한군은 언제 어디서 기습을 감행할지 모르는 '불암산 유격대'의 존재에 대해 질색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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