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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해방이후 대한민국 국군의 역사

똥베이런 2016.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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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군의 시초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이다 혹은 국방경비대다 하는 이야기가 많이 있는데 국가정체성 탓에 광복군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국방부 스스로는 국군의 뿌리는 의병과 광복군에 두고 있다 사실 독립 이후 국방경비대로부터 시작해서 대한민국 국군이 창건 되었을 때만해도 조선인 일본군 장교들이 대거 참여하여 미군식 교육을 받았지만 일본군식 스타일로 훈련시키고 체계를 완성했기에 실질적으로 국방부나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대한민국 국군의 시초는 한국 독립 광복군으로 시초를 정식적으로 두고있다


일제해방 이후 대한민국 국군의 역사



대한제국 ~ 일제해방 초기


대표적인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는 기본적으로 구 일본군이 남기고 갔던 피복류와 총기류 등을 사용했었으며 1947년부터 조금씩 미군 군복 등과 독자적인 한국군의 표식으로 바뀌어갔을 정도로 국군의 초기 건군과정은 상당히 가난하고 고달픈 연속이었다 경비대 사관후보생의 경우 일본이 망했을때가 여름이었던 관계로 남은게 일본군 하복밖에 없어서 초기에는 일본군 하복만 입은채로 가을과 겨울을 날 수 밖에 없었고 일부 일본군 출신들은 일본군 군복은 물론이고 승마용 장화를 신고 일본은 26식 권총을 차고 일본군 장식용 망토를 휘날리며 말을 타고 다녔다 이에 미군은 태평양 전선에서만 보던 일본군 유령들을 조선에 와서 보자 기절초풍 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한국전쟁 이전까지 일본군이 사용했던 7.7mm 99식 소총을 한국전쟁 말기까지 사용한것이 한국군의 현실이었고 개인장비가 이런 수준인데다가 한국군은 당시 M8그레이하운드 24대도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고 종종 잔고장을 내면서 주한미군 군사고문단들이 결국 불평하는것이 현실이었다 물론 한국군에 대한 미군에 대한 시각은 신생국이라는 시각과 경찰이 대응하기 힘든문제에 대한 대응력정도를 가지고 있는 경비대 수준 그 이상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1950년 6월 25일 당시 북한군의 기습공격이 시작 되었을 당시에 부족한 병력과 장비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서 싸웠으나 워낙 전면적인 비상이 풀린상황에서 당한 기습이었기 때문에 한국군은 상당히 고전 할 수 밖에 없었다 추가적으로 국군수뇌부간의 갈등(채병덕과 이형근의 갈등)이나 국군통수권자인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국방장관인 신성모는 서울에서 도망칠 궁리나 하는 등으로 국군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으며 오직 미군의 개입의 희망 한가닥만 가지고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현대화된 군대인 북한군과 싸워야했다



결국 UN연합 안보리에서 한국전쟁을 북한의 불법남침으로 보고 파병 결의안에 승인이 떨어졌는데 미군과 UN국제연합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하면서 한국군의 세력과 장비가 급속도로 성장해버린다 하지만 중공군이 북한을 돕기 위해 투입된 이후로 2군단과 3군단이 붕괴해버리는 현리전투 등 전선의 정체성을 후퇴시키게 된다 결국 미국, 소련, 중국의 협상으로 인하여 3년에 걸친 전쟁 끝에 휴전협정을 체결해버린다

 


간첩과 공작원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도 상당히 많은 소규모 전투가 있었으며 때로는 수십명에 달하는 인원들이 전투를 치루기도 하였다 1950년대 말에는 한국 인구가 3천만이 안되던 시절이었으나 한국의 국군은 60만명에 달했다 한국정부는 일부 군축을 하는데 당시엔 설비가 제대로 안되어 있어서 중위 8년차나 9년차까지 많이 있었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무장공비가 넘어오고 한국도 북파공작원을 보내는 등의 서로 치열한 비정규전을 수행하게되는데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1996년에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있다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길러진 군기의 결과는 북한의 무장공비 침투가 한창이던 1960년대 ~ 1980년대까지 대간첩작전 사례가 잘 들어나있다 



월남파병 (베트남파병)


1960년대 중반에 베트남전쟁이 발발하자 한국군은 미국의 동맹국 자격으로 연합군병력으로 국제전에 참전한다 한국군의 최초의 국제전이며 전쟁 당시에 2개사단, 1개 여단의 병력으로 미군보다 월등한 전투력을 보이면서 "한국군은 정말 강하더라" 라는 인상을 남겼다 특히나 베트남에서 한국군의 명성은 대단했는데 한국 또한 남북으로 갈라져서 전쟁을 경험했고 제주도 4.3 사태를 경험한 한국군은 게릴라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으며 게릴라전에 대한 대비가 철저했기 때문이기도 한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 한국군은 미국의 어려운 사정으르 이용하여 상대적으로 안전하거나 민사적전에 주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과를 올릴 수 있는지역을 골라서 배치되도록 미국과 베트남을 구워삶은 것도 사실이지만 당시 박정희 정권으로서는 베트남파병이 정치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민사작전능력을 발휘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득이하게 수 많은 전투를 치러야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군은 모든 연합군 부대를 능가하는 뛰어난 전투능력을 과시해보였고 베트남전쟁을 겪고 난 뒤에는 경험과 무기 등을 이용하여 독자전인 발전을 시작하게 된다



박정희 정권 ~ 현재까지


베트남 전쟁 이후로 1980년대 이후에는 한국군은 군부출신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이 집권하고나서 특히 특수부대가 육군에서 대량창설되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조직으로는 바로 특공여단과 특공연대와 같은 조직이다 하지만 1970년 후반을 기점으로 사실상 유동적인 역활을 할 수 있는 파병활동이 사실상 없었으며 실전경험이 많았던 참전인력들이 비 전투경험세대와의 교체타임을 겪으면서 한국군은 조직문화나 조직적 형태가 매우 경직되어버렸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반도가 포함되어 있는 동북아시아 지역에는 군사 밀집도가 제일 높은 지역이 되었으며 2차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될 경우 남한과 북한에서만 참전하는 병력만 1,000만명으로 보고 있다 사실 전쟁이 발발하면 안되는 경우이지만 2016년 기준으로 한국군의 전투력은 세계11위의 군사강국이므로 어느정도 전쟁 억제력을 가지고 있는 군대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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