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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고려정부! 삼별초의 난

똥베이런 2016.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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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의 난의 경우에는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는데 고려정부에 대한 반란이라고 볼 수 있으며 다른시각으로는 오랜기간 동안 전쟁을 해오던 몽골제국(원나라)에 대한 무신정권의 마지막 항쟁이라고 볼 수 있다


발생시기 : 1270년 5월 ~ 1273년 2월


교전국 : 삼별초 vs 고려,원나라(몽골)


삼별초 정부 이동경로 : 강화도 -> 전라남도 진도 -> 제주도



강화도에서 난을 일으키다


무신정권의 11대 집권자였던 임유무가 살해당하자 고려 24대 국왕인 원종이 개경으로 돌아가려고 준비하자 삼별초는 반발하여 따르지 않고 반발하였으며 1270년 6월에는 배중손, 노영희 등이 군사를 이끌고 강화도에서 반란을 일으켜 강화도와 육지에 대한 교통로를 차단해버렸으며 고려왕족인 왕온(현종 8대손)을 협박하여 왕으로 추대하였다 삼별초가 반란을 일으킨 과정에서 강화도를 지키는 고려군사들이 많이 도망치거나 육지로 나갔기 때문에 강화도를 지키지 못할것이라는 판단으로 인하여 1천여척의 함선을 징발하여 강화도에 있는 재화, 백성들을 모두 싣고 남쪽으로 내려갔고 고려군 지휘관인 이숙진, 윤길보 등이 추격하자 군세를 과시하여 도망가게 만들었으며 이어 계속되는 추격을 받았지만 무사히 남행하여 진도에 도착하였다



진도에서의 항쟁


1270년 8월에 진도에 도착한 삼별초는 여러개의 성을 침략하여 황제의 명령이라 사칭하면서 전라도 안찰사(전라도 담당 행정관리)에게 백성들로부터 곡식을 거둬들일 것을 독촉 하면서 백성들을 주변의 섬으로 옮겨 살게하였으며 1270년 12월에는 고려조정에서는 삼별초 진도정부에 사신을 보내 몽골의 조서를 받들고 위로하면서 항복시키려 했지만 고려정부의 항복권유를 거절했으며 고려정부에서는 고려군을 보내어 진도를 공격하자 삼별초에서는 반격을 했지만 고려군의 필사적으로 저항하여 삼별초는 철수 했다 다음해인 1271년에 삼별초의 연전연승으로 재대로 방어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가 고려군의 공격을 받아 왕으로 추대했던 왕온(현종 8대손)이 죽고 전함 수 십 척이 포획되는 큰 피해를 입자 김통정(배중손 후임 삼별초 지도자)이 진도의 삼별초를 이끌고 탐라도(제주도)로 들어간다 또한 고려정부도 삼별초가 탐라도(제주도)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80척의 함선을 이끌고 추격하였다



탐라도(제주도)에서의 항쟁


1272년 3월에 전라도에 정박중인 고려의 함선을 약탈하였으며 8월에는 전라도의 곡식 8백석을 약탈하고 전주에 있는 안남도호부(고려시대 지방행정기구) 부사를 붙잡고  합포(현 경상남도 거제시)와 거제현(현 경상남도 거제시)의 고려함선을 불태우면서 탐라도(제주도)에 본진을 두고 지속적으로 고려정부에 대하여 대항하였다



고려-몽골연합군의 삼별초 진압


1272년 12월에는 몽골(원나라)가 고려에 조서를 내려 군사 9천을 징발하게 했으며 1273년에는 삼별초가 함선 10척을 이끌고 합포(현 경상남도 창원)을 공격해 함선 32척을 불태우고 항전했으며 1273년 4월에는 고려-몽골의 연합군이 군사 1만과 전함 160척을 이끌고 탐라도로 들어갔으며 매복하고 있던 삼별초가 고려군을 공격했지만 고려군이 대항하여 삼별초를 공격하여 격파하고 많은 인원의 삼별초군 포로로 생포하였으며 고려-몽골 연합군의 협동공격으로 삼별초의 본진을 공격하여 함락시켰고 대부분의 삼별초 병력들은 항복하면서 전세가 뒤집혀 버리자 김통정(배중손 후임 삼별초 지도자)가 70명의 삼별초를 거느리고 산 속으로 도망가 농성을 벌였으나 김통정이 사망하자 삼별초의 난은 막을 내렸다



삼별초의 난에 대한 평가 및 결과


고려


삼별초의 항전은 고려의 몽골에 대한 항전의 최후를 장식한 것으로 고려는 14세기 중반까지 원나라의 정치적 관리하에 통치당하게 되며 이러한 상황 때문에 고려의 백성들 중 삼별초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고 남부 지방으로의 조세(세금)가 개경으로 운송되지 않기도 하였다


원나라(몽골)


몽골은 탐라총관부(제주도 지방행정기구)를 설치하여 1294년까지 탐라도를 직접 통치하였으며 고려의 반란 진압의 도움을 준 것으로 인하여 일본원정에서 고려정부의 지원을 더 많이 얻어낼 수 있게 되었다


평가


현대에 들어서 삼별초의 난은 외세침략에 대한 완강한 저항을 한 항쟁이라고 평가받기도 하지만 반대로 무신 사병집단의 저항정도로만 보는 시각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삼별초가 진도에 주둔하고 있던 용장산성과 같은 곳들은 유적지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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