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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조선의 천재개발자 4명

똥베이런 2018.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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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는 천재개발자들이 개발한 무기로 나라를 구하거나 또는 변방의 침략자들을 막는 중요한 역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들은 동양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존재했던 조선의 천재 개발자 4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최무선 

(화약마스터)


최무선은 여말선초 당시의 장군이며 화약 개발이 너무 유명하다 보니 과학자라는 시선이 있습니다. 하지만 최무선은 과학자가 아닌 무과시험에 합격한 장군이었습니다. 최무선은 한민족이 화포 테크를 탈 수 있도록 한 인물입니다. 최무선이 화약 개발에 있어서 국가의 도움없이 화약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또한 최무선 일가는 상당히 거대한 상인 가문이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고 합니다. 최무선이 화약개발을 하게 된 이유는 당시 왜구의 침략으로 인하여 고려 백성들이 고통받고 있는 현실을 보고 화포를 개발하기로 마음 먹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최무선이 화약개발에 있어서 평소에 친분이 있던 중국상인(원나라 사람)이 최무선이 국가를 위한 목숨을 건 개발행위에 감탄하여 그냥 가르쳐 줬다고 합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중국상인이 화약 기술을 가르쳐주기 이전에 대충 완성이 됐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중국 상인이 화약 기술을 그냥 알려준 것이 아니라 중국상인에게 의복과 음식을 주어 구슬렸다고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박강

(신기전의 개발자)


신기전은 고려 말기 최무선이 개발한 주화라는 무기를 조선시대에 이르러 그의 손자와 장영실이 개량한 발사장치라고 합니다. 조선후기 기록에는 세종대왕이 화차를 개발 할 당시 영락제의 화차를 참조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는데요. 신기전이라는 발사장치는 새롭게 개발한 물건이 아닌 명나라의 영향을 받아서 개발된 무기를 개조 한 물건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신기전의 경우에는 실전에도 사용이 많이 된 무기이며 약 200년 이상 관리가 잘 되었기 때문에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방어전, 명량해전에서 조선군을 지원한 화기가 바로 신기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류성룡의 서애집에서는 임진왜란 당시에 신기전은 아군 신호용 탄으로 쓰이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신기전과 같은 로켓형 화살을 전투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군대는 명나라 군대였다고 하는데요. 특히 이인좌의 난 당시 반란군을 진압하는데 사용해 효과를 보기도 했고 조선 초기에 있었던 이시애의 난에도 유용하게 쓰였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정평구 

(세계최초의 비행기 비거)


정평구는 비거라고 읽기도 하고 비차라고도 읽는다고 합니다. 정평구는 임진왜란 당시 발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종의 글라이더 혹은 열기구 정도로 추정되는 물건입니다. 발명가는 전라북도 김제군 출신으로 정평구라는 사람이 개발했으며 형태와 구조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가 없다고 합니다. 비거에 대한 기록은 임진사를 적은 왜사기에 정식으로 거론되고 있으며 비거 때문에 일본군이 작전을 전개하는데 있어서 큰 곤욕을 치렀다고 합니다.



비거에 대한 활용에 있어서는 진주성 방어전 당시 외부에 있는 아군과 연락하기 위해 비거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또한 왜군에게 점령 당한 성안에 갇혀있는 성주를 태우고 30리 밖으로 탈출했다고 하는데요.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의 실태나 일본군의 실태를 정확하게 기록한 왜사기나 일본에서 서술한 일본 정사서에는 기록이 있는 물건이니 허위로 만들어진 발명품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고 합니다.



나대용 

(거북선 제작자)


나대용은 조선 중기의 무관으로 전라남도 나주출신이라고 합니다. 나대용은 1591년에 전라좌수영에서 전투선 연구를 집중적으로 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발발하자 당시 전라좌수사 이순신과 함께 옥포해전, 사천해전, 한산도해전, 명량해전, 노량해전 등 주요 해전에 참전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고 하는데요. 나대용은 사천해전에서 탄환을 맞아 부상을 당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나대용은 거북선의 설명에 있어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지만 나대용이라는 무관의 인지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수 해전에서 많은 공을 세운걸 보면 나름 문무를 겸비한 임진왜란 당시 조선수군 주요장수 중 하나였을 것인데요. 나대용은 실전을 통해 거북선을 실질적으로 건조한 기술자라는 점에 있어서 크게 평가 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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