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임진왜란 이후 일본이 조선과 화친을 맺은 이유

똥베이런 2018.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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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이후 일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권력자로 올라서면서 조선과의 화친을 맺으며 조선과 활발한 교류를 진행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이 조선과 화친을 맺은 이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592년 일본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침공했고 이로 인해 임진왜란이 발발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조선에 나가있던 일본 정벌군 전부는 일본으로 후퇴하게 되는데요.



정벌군 후퇴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이시다 미츠나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진영 간의 전투인 '세키가하라 전투'가 발발하게 됩니다. '세키가하라 전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측의 승리로 끝이나게 되었는데요. 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에도 막부를 설립하고 일왕의 대리인 자격으로 일본은 통치하게 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막부를 설립한 후 일본은 조선측에 조선을 침공했다는 잘못을 인정하고 '통신사'를 파견하여 화친을 제안했는데요.



일본측의 화친 제안은 긴 시간이 흘러 조선에서도 받아들였고 조선과 일본은 활발한 교류를 하며 관계를 개선하게 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막부 설립 이후 조선측에 바로 화친을 제안한 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공의 반대파였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조선 침공 당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지의 병사들을 지원하지 않았고 패배 할 전쟁임을 미리 짐작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임진왜란 당시 일본 정벌군은 조선 수군이 남해안을 장악하게 되면서 고립되게 되었는데요.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조선의 바다가 삼면이라는 것과 다시 침공을 하더라도 일본이 조선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에도 막부 설립 이후 바로 조선에 '통신사'를 보내 조선 침공을 사과하고 화친을 제안한 것은 시대 상 흐름을 잘 읽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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